건강도서/세계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

2권3장. 달러와 국채를 사도록 '석유위기' 연출했다 1

생활건강 연구가 2019. 12. 30. 12:05


2권3장. 달러와 국채를 사도록 '석유위기' 연출했다 1


  ※ 독후감


 세계 금융자본가인 록펠러는 석유를 독점하여 거액을 부를 쌓았다. 그는 산업용 알콜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 시키고, 모든 기계들의 엔진 연료를 석유를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석유의 용도는 연료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화학섬유, 농약 비료, 약품 등의 재료로 무진장하게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전통농업을 농약비료의 화학농업으로 바꾼 배경에는 생산량 증가라는 것은 구호일뿐, 석유 이익을 극대화 시키려는 것이었다. 오늘날 자연과 농지 먹거리의 파괴의 뒤에는 세계 금융자본가들이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석유에서 약품을 만들어 환자에게 투여하고, 그 화학독으로 치료가 건강을 헤치고 있다. 환자 건강이 나빠질수록 또다른 약을 사용하게 하여 그들은 더욱 큰 이익을 얻게 되는 구조가 현대의료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의 놀라운 비밀은, 매장량이 한정된게 아니라 지구 내부의 압력으로 끊임없이 솟아난다는 사실이다. 세계 금융자본가들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 에너지 위기를 조장하며 돈을 벌고 있다. 미국이 자국산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국채를 팔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생활건강연구가  생태농부


2권3장. 달러와 국채를 사도록 '석유위기' 연출 1


 ◇ 석유로 거대한 부를 쌓은 록펠러


 이 장에서는 2차대전이 끝난 뒤부터 현재까지 록펠러 가문이 주도로 움직이는 석유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겠다. 그에 따라 미국의 움직임도 살펴볼 것이다.


 록펠러 가문에 거액의 부를 안겨준 것은 바로 석유다. 그 과정을 알면 석유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짤막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석유에 관한 역사와 사건들을 해설한 매우 독특한 일본어 사이트가 있다. 석유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전문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이 장을 쓰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중략)


 1911년, 존 디.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 석유가 너무나 거대해진 탓에 독점 금지법에 저촉되어 회사가 분할되었다. 현재의 쉘과 모빌, 엑슨, 셰브론 등 34개의 석유 회사가 된 것이다. 분할된 뒤에도 스탠더드 석유의 임원이 각 회사에 그대로 남아 서로 협력하며 석유비즈니스를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윽고 금주법이 제정되며 산업용 알콜의 제조와 사용이 금지되었다. 전세계 선박의 연료는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었다. 여기에 1차대전 때 등장한 비행기와 전차 등의 신형 병기가 모두 석유를 사용했기 때문에 석유 소비량은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소비량이 증대되고 있을 때 록펠러는 공급부족을 이유로 휘발유의 가격을 올렸다. 이 수법은 이후에도 종종 사용된다.


 석유를 취급하는 회사가 난립하던 시절에는 가격 변동이 심했지만, 1930년대에 1배럴이 1달러가 된 뒤로는 한동안 가격이 안정된다.  상품 거래 시장에서는 수요가 늘어나 물건이 귀해지먼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상식이다. 21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에너지 위기'라고 부르는 석유 부족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석유 가격은 계속 상승해 왔다. 2008년에는 1배럴에 146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투기의 영향도 있을지 모르지만 석유수요 부족 현상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참고로 석유의 양을 재는 단위인 '배럴'은 채취한 석유의 운반과 저장에 펜실베이니아의 와인통을 사용했던 데서 유래했다 지금은 1배럴이 와인통보다 조금 큰 42갤런(약159리터)크기가 되었지만, 드럼통이 된 뒤에도 석유의 계량 단위로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 산유국과 석유 메이저의 패권 다툼


 수많은 업자가 경쟁해 가격은 항상 불안정했지만, 석유에 관한 모든 것은 금융자본가의 손에 운영되어 왔다. 금융자본가들은 석유의 별견, 채굴시설의 건설, 산지에서 소비지로 운반, 석유 정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남미나 인도네시아 등 미국 이외의 나라라 해도 이것은 변함이 없다. 산지와 관계가 깊은 원유 가격도 정제, 판매를 담당하는 구미의 업자들이 결정했다. 산유국은 아무리 노력해도 강한 결속을 자랑하는 국제 석유자본(석유메이저)에 대적할 수 없었다. 그런데 1954년, 그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이란의 유전을 둘러싸고 국제석유자본 8사가 모여 협의한 끝에 이란 국제기업 연합, 통칭 '컨소시엄'이 탄생했다. 석유 이권을 이란에 되돌려 주고 생산된 모든 석유의 구입과 판매를 컨소시엄이 담당하며 그 이익을 8사가 분배하는 형태였다. 이 방식은 그 후로 전세계로 퍼졌다. 그 결과 산유국은 드디어 석유 이권을 되찾고 그 거대한 이익을 배분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국제석유자본도 컨소시엄 덕분에 이란의 석유 자원을 포함한 중동 전체의 석유 자원을 자유롭게 조절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에따라 세계 석유 시장의 지배를 확고히 했다. 이후 석유 가격이나 산유국에 지불해야 할 이권료와 세금을 결정하는 힘은 석유 메이저라고 불리는 엑슨과 모빌, 셰브론, 텍사코, 걸프, 로열 더치 셸,  브리티시 석유 회사의 일곱 자매에 프랑스 석유를 더한 석유 정제와 판매를 모두 취급하는 8사의 모임이 가지게 되었다.


 이 석유 메이저는 산유국에 아무런 통지도 없이 두 번이나 멋대로 가격을 내렸다. 여기에 반발한 산유국들은 석유 가격 결정권을 가져올 목적으로 1960년에 OPEC(석유 수출국 기구)을 결성했다. 오페크는 결성된지 10년까지도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가격 결정권은 여전히 석유 메이저가 장악했다.


 1971년 2월 14일에 있었던 산유국과 석유 메이저의 교섭으로 주도권은 산유국으로 넘어갔다. '테헤란 협정'이라고 부르는 계약을 계기로 석유의 가격 결정권을 산유국이 가져갔다. 이후 오늘날까지 오페크의 생산 조절을 통해  석유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고 전세계가 믿고 있었다. 


  ◇ 오페크의 '원유 가격 결정권'은 이미 빼앗겼다


 2008년에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분은 기억하는가? 당시 원유 가격이 변동하는 모습을 말이다. 2차 이라크전쟁 이후 서서히 상승하던 원유 가격은 2008년 봄부터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7월 3일의 1배럴 145.29달러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반전하더니, 3개월 뒤인 10월 16일에는 최고치의 절반 이하인 69달러까지 떨어져 버렸다.


 보도에 따르면 봄부터 시작된 급격한 가격 상승의 원인은,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식 시장에 환멸을 느낀 투자가들이 석유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 급격한 하락은 투자 세력이 석유에서 자본을 빼갔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몇 년간 계속된 가격 상승에 즐거워하다가 갑자기 가격이 하락하더니 한없이 추락하자 오페크는 충격에 휩싸였다. 방어선인 1배럴 70달러를 지키고자 10월 24일에 서둘러 빈에서 임시 총회를 개최해 인도네시아와 이라크를 제외한 11개국이 11월 1일부터 하루 생산량을 2,880배럴로 감산한다고 발표했다. 유가 상승을 배경으로 재정 지출을 확대해오던 오페크 가맹국들로선 어떻게든 70달러는 유지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일반적으로 감산이 발표되면 유가는 상승세로 전환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산 발표 후에도 가격이 오르기는 커녕 계속 떨어졌다. 유가 하락은 감산이 실제로 시작된 11월에도 멈추지 않았고, 11월 19일에는 54달러까지 하락했다. 12월 중순에는 40달러선이 무너졌으며, 그 후에도 계속 하강 곡선을 그렸다.


 9월 15일에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표면화된 이후 전세계의 주식 시장에서 주가가 급락했다. 아무리 거액의 자금을 운용하는 헤지 펀드라 해도 9월 15일 이후에는 회계상의 평가손을 메워야 할 필요성에서 자금 보유량을 늘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즉 자금을 투기에 돌릴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11월에 석유 감산이 발표되었음에도 석유 투기에 돌릴 여유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석유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 전인 7월 초순에서 9월 중순까지 2개월 반에 걸쳐 유가가 줄곧 하락한 것은 오페크에는 원유 가격을 결정할 힘이 없다는 의미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로 석유 문제에 관한 유력 싱크탱크인 세계에너지연구소의 수석 경제 전문가가 "오페크가 시장을 지배하던 것은 먼 옛날 이야기"라는 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1971년부터 2008년에 이르기까지 37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유가 결정권이 산유국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 한 목사가 폭로한 석유 위기의 허구성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지금은 누가 원유 가격을 결정하고 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흥미로운 책이 있어 소개해겠다. 크리스트교 목사인 린지 월리엄스가 쓴 <에너지 무위기>라는 책이다.


 그는 "나는 신앙심 깊은 양친 밑에서 성경과 함께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는 목사로 살아왔기 때문에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목사가 석유 업계의 뒷사정을 책으로 쓰다니 관연 신빙성이 있는 정보일까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가 폭등에 전세계가 비명을 지르던 2008년 5월에 이 목사는 많은 청중들이 모인 강연회에서 석유가격이 곧 하락할 것이며 큰 금융 위기가 1년 안에 찾아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의 정보는 정확했던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알래스카에 가기 전까지 저는 누군가가 '세계를 정복하려 하는 일당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당신 혹시 존 버치 협회 회원 아니요?'라고 비웃으며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당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저는 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식사도 같이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알래스카에서 보낸 2년 반이 그의 인생관을 바꿔 놓았고, 지금은 '이대로는 미국이 그들에게 지배당하고 만다'라는 생각에 전국을 돌며 대부분의 시간을 강연 여행에 할애하기 시작했다.


  ◇ 세계의 기축 통화는 달러가 아니라 석유다


 린지 목사가 석유와 관계하게 된 경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알래스카 석유 채굴 사업과 채굴된 석유나 천연 가스를 운반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애틀랜틱 리치필드의 채굴 현장에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교회에서 파견되었다. 그 전까지 그는 크리스트교 침례교 목사로서 20년 이상 활동해 왔다. 교회에서 파견되었기 때문에 그는 1센트의 급료도 받지 않았다.


 그의 활동 덕분에 공사 작업원과 회사의 노무 관계가 많이 원만해지자 애틀랜틱 리치필드사는 그가 파견된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에 선교 활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임원 대우를 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처음에 그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컨대 급료는 나오지 않지만 회사의 자동차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고, 현장이나 사무실 등 어디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임원 회의에 참석해 회의 내용을 듣고, 사무실에 있는 어떤 서류라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파이프라인 건설이 끝나자 그는 2년 반에 걸친 파견 생활고 작별을 고하고 알래스카를 떠났다. 그 후 그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주의 깊게 생각해보니 리치필드사의 임원 회의에서 임원들이 이야기한 내용이 몇년 뒤 언론에서 보도되기 시작했고, 그들이 임원 회의에서 말한 것처럼 세계 정세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소수의 인간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수십년 전부터 계획한 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목사가 깨달은 사실은 바로 이것이었다.


 현재 석유의 용도는 자동차 등의 동력용, 공장이나 가정의 열원용, 약품, 플라스틱, 화학 섬유, 비료 등 수많은 화학제품의 원재료로 전세계에서 폭 넓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를 타는 사람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석유를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과거에 일본이 석유를 얻기 위해 인도차이나를 침공했을 때 이상으로 세계 정세와 석유는 매유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계의 기축 통화는 달러라기보다는 석유라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인 듯하다.


  ◇ 사실은 무진장 남아있는 석유


 이 <에너지 무위기>라는 책은 문고본 크기이지만 알래스카의 툰드라에서 그가 보고 들은 내용이 240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적혀 있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제1장인 '대규모 석유 사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하겠다. 그는 미국 국내 사정을 바탕으로 책을 썼기 때문에 국제적인 사정과는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사실 에너지 위기 따위는 없었다. 지금까지 석유 위기가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연방 정부가 국민을 지배할 목적으로 계획했던 때를 제외하면.....  내 말이 조금 지나치게 들리는가? 진실을 말하면, 나도 에너지 위기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정부와 한통속이 된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지금부터 내가 이 책에 쓰려고 하는 내용을 나는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눈으로 직접 봤다."


 어느날 그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콜로라도 주 상원의원을 알래스카에 초대했다. 다음은 회사 책임자와 함께 현장을 돌아본 뒤 상원의원이 그에게 한 말이다.


 "린지 목사, 나는 오늘 여기에서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들은 내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소. 내가 콜로라도 주 의회에 있었을 때 연방 정부에서 사람이 와서 왜 석유 위기가 일어났는지 설명을 하고 간 적이 있소. 하지만 내가 오늘 여기에서 보고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때 연방 정부의 사람이 한 말은 거의 날조된 이야기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소."


 다음날, 이 이원은 회사의 최고 경영자에게 질문을 했다.


 의원 : 당신은 이 알래스카의 북사면에 석유가 어느 정도 매장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영자 : 지진계를 이용한 조사와 이미 실시한 드릴 채굴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사우디 매장량에 필적하는 석유가 알래스카 북사면의 지하에 잠들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원 : 만약 정말로 석유 위기가 있었다면 왜 그 많은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죠?

 경영자 : 연방 정부는 우리에게 알래스카 북사면의 유전 한 곳에 대한 채굴 밖에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의원 : 당신은 이 알래스카 북사면에 많은 유전이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경영자 : 의원님, 연방 정부는 이 광대한 북사면의 한 줌 정도에 불과한 사방 100마일(160킬로미터)에서만 채굴을 허가했습니다. 알래스카의 북사면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사방 100마일 넓이의 구역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북사면의 지하에는 엄청난 양의 원유가 잠들어 있습니다.


 의원 : 연방 정부의 의도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연방 정부의 이 정책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요.

 경영자 :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연방 정부는 우리를 독점 기업으로 규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정부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회사를 분단시켜 약화시킬 수 있지요. 다음으로 석유 회사를 국영화하고 싶어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원 : 만약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왜 미국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해 경고를 보내지 않는 것입니까?

 경영자 : 저희는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없습니다. 법률상으로 수많은 규정과 규칙이 성립되어 있어서, 만약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그 법률과 규칙을 전부 저희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히는 6개월 안에 파산하고 말 것입니다


  ◇ 에너지 위기를 조장하려 정부가 파이프 라인을 닫았다


  린지 목사는 1973년의 석유 위기 때 자신이 겪은 경험을 책에 썼다. 1972년에 와이오 주에서 3,200에이커 목장을 관리하는 지인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서부에서 동부로 석유를 운반하는 주요 파이프라인 중 하나'가 그의 토지에 부설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은 에너지 위기가 찾아올 위험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는데, 목사는 파이프라인에 석유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어 이런 상태라면 안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974년 가을에 다시 목장을 찾아갔는데, 이때 그는 2년 전에 비해 파이프라인이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시중에선 석유가 부족해 정유소에 긴 줄이 늘어서고 있는데 파이프라인에 석유가 흐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즉시 지인의 집으로 달려간 목사는 지인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두세 달 전에 석유회사에서 사람들이 와서 파이프라인을 닫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작업원에게 물어봐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자를 찾아가 물어보니 "정부의 명령으로 파이프라인을 닫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지인은 말해 줬다. 


 목사는 1974년에 알래스카로 돌아가 회사 경영자에게 와이오밍 주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회사 경영자는 "저희 석유 회사는 에너지 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의 명령에 따라 몇몇 대륙 횡단 파이프라인을 닫고 중요한 특정 지역에 있는 정유소의 생산을 감소시켰습니다."라고 말해 줬다고 한다. 참고로 1973년은 4차 중동 전쟁이 발발에 따른 오페크의 감산과 가격 인상으로 전세계가 커다란 영향(1차 석유 파동)을 받은 해였다. 


  ◇ 미국이 자국 석유를 사용않는 이유 '산유국에 채권 팔려고'


 린 목사의 첫번째 책인 <에너지 무위기>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강연 내용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따르면 알래스카에서 선교활동을 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에게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고 한다. 린지 목사는 전화가 온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엽으로 생각된다. 


 그 사람은 이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세상에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이 있는데 목사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있다고 주의를 주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목사가 하는 말은 모두 경고를 준 사람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것으로, 이야기에 일관성은 전혀 없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기에 소개하겠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록펠러 형제 기금에서 일하던 헨리 키신저가 1970년대 초반에 산유국을 돌며 두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첫째, 미국이 석유를 대량으로 구입함으로 그 결제를 앞로로 달러로 할 것을 승낙 받았다. 즉 산유국이 석유를 팔 때는 대금을 달러만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 무렵 달러는 금과의 태환 지폐였으므로 산유국으로서도 전혀 이견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달러는 그 후 세계의 기축 통화라는 지위를 확립했다. 


 둘째, 석유로 벌어들인 달러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을 미국 채권 구입에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아랍 산유국으로부터 받아냈다. 이에 따라 달러가 항상 매수되게 됨으로써 달러의 가치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자국의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자국의 석유를 사용하면 석유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국채 판매량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약에 사인하지 않았던 나라가 둘 있다. 바로 이란과 이라크다. 2차 이라크 전쟁 뒤 부시 일당이 이란 침공을 계획했다는 것은 중동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국 실행은 못했지만, 부시가 퇴진하기 전까지 이란 침공 가능성이 30% 남아 있었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그는 알래스카 석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했다. ARCO가 2년 반에 걸친 공사를 끝내고 석유 채굴을 시작한 때는 1977년이었다. 그 때 석유 전문가들은  유전 매장량이 170만 배럴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20년이면 고갈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알래스카 석유는 지하의 압력으로 자연히 분출되는데, 계측한 압력은 1,500파운드였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석유가 분출되고 있다. 압력도 변함없이 1,500파운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뽑아낸 석유의 양은 440만 배럴에 이른다고 한다.


 이 신기한 현상의 이유를 린지목사는 석유가 지구 내부에서 계속 보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믿어지는가? 참고로 석유는 화석 연료가 아니라는 설을 소개하는 사이트도 있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2권  기쿠카와 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