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국제 금융자본가들 목표는 '세계 지배' 2
※ 독후감
국가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결정하고 통화량을 조절하며 국가의 살림살이를 좌우한다. 이렇게 중요한 중앙은행이 사립화되자 그들은 인위적으로 공황을 유도하고 경제를 혼란시켜 자신들의 이익 증대에 이용해 왔었다. 이런식으로 세계의 부를 모두 장악하면 그들의 목표인 세계 지배는 자연스럽게 달성될 것이다.
중앙은행이 가지는 통화 발행권이야말로 금융자본가들에게는 그나라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때문에 탐욕에 젖은 금융자본가들과 양심있는 정치가들은 통화발행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다. 미국에서도 건국이래 8차례나 양자 사이를 오갔으며, 지금은 금융자본가들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중앙은행을 장악하고 통화 발행권을 거머쥔 그들은, 인쇄비만 들여서 돈을 만들어내고 정부에는 액면가에다가 이자까지 붙여 빌려준다. 이는 금융자본가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만, 국가나 국민은 결국 가난할 수밖에 없고 그들의 노예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민간인이 통화 발행권을 획득한 것은 1694년 영국은행이 시초이며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다섯 아들을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에 보내 그곳에서 중앙은행을 만들게 함으로써 로스차일드 번영의 기초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자신에게 통화 발행권을 주면 법률은 누가 만들든 상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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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국제 금융자본가들 목표는 '세계 지배' 2
◇ 안정은커녕 혼란만 초래하는 연방준비제도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12개의 연방준비은행을 관리하는 연방준비위원회 제도는 1913년에 입법화되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중앙은행은 일반은행과 달리 일반대중과는 거래하지 않고 국내의 시중은행이나 대기업, 타국의 정부 중앙은행과 거래한다. 또 기준 금리를 결정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의 공급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경제 상태와 밀접하게 관계하며 경기를 좌우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일반 시중은행보다도 일반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일본에서 1980년대에 거품 경기가 발생한 것도, 1990년대에 그 거품이 붕괴된 것도 일본은행의 금융 조정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는 전문가가 있을 정도다. 거품 붕괴가 일본 국민 모두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미국에 사는 내가 이제와서 굳이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만큼 중앙은행이 국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
현재의 연방은행이 설립된 뒤로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의 공급량과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 동향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또 연방준비은행의 설립을 강행하면서 금융자본가들이 내세운 핑계는 '인위적으로 경제와 금융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들여다보면 안정은커녕 인위적으로 경제를 혼란시켜 자신들의 이익 증대에 이용했음이 뚜렷이 드러난다.
◇ 미국 경제의 부침은 FRB의 손에 달렸다
첫 번째 인위적 공황
1914년부터 1919년에 걸쳐 연방준비은행은 통화 공급량을 배로 늘리고 지방의 중소 은행에 돈을 빌려줬다. 그 결과 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출이 급증해 경기가 상승했는데, 연방준비은행은 1920년에 갑자기 모든 대출금을 회수하라고 은행에 명령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명령이라 당연히 돈을 갚지 못하는 기업과 개인이 속출했다. 필연적으로 기업의 도산이 이어졌다.
미국 전역이 연방은행 설립 전인 1907년에 JP. 모건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경제 패닉과 같은 수준의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서 도산 위기에 빠진 5,400개나 되는 중소 은행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다. 여기에 맛을 들인 그들은 이어서 더욱 커다란 혼란, 즉 세계 대공황을 일으킨다.
두 번째 인위적 공황
1921년부터 1929년 사이에 연방준비은행은 또다시 통화 공급량을 62%나 늘렸다. 이때도 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출이 증가했다. 주식 시장에서 마진론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대출 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주식으로 샀을 때는 내야 하는 금액이 10%를 적립하면 금융 부로커가 나머지 90%의 금액을 대출해 주는 상품이다.
절차도 간편했기 때문에 누구나 이 대출을 이용했다. 그 결과 적은 원금으로 큰 이익을 거두며 주식 시장은 공전의 활황을 누렸다. 이 무렵 다우 평균 주가는 5년 사이에 5배나 급등했다. 이 간편한 대출에는 함정이 숨어 있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언제라도 자신이 원할 때 상환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 마진콜이라고 부르는 이 상환 청구를 받으면 그 시점에서 24시간이내에 돈을 갚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이 규정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한 구속 조건이다. 브로커들은 만에 하나 마진콜이 발생해도 그 자리에서 주식을 팔면 대출을 상환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조항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이용했다.
1929년 여름부터 존 D, 록펠러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주식을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매각했다. 주식 시장에서 모든 자금을 회수한 건이다.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금융회사가 10월 24일(목요일)에 마진콜을 발동하자 일반인들은 공항 상태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사자 주문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팔자 일색이었다. 당연히 주가의 대폭락이 시작되었고, 불온한 분위기에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또 이날에만 시장 관계자 11명이 충격으로 자살하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이것이 훗날 '검은 목요일'이라고 부르는 주가 대폭락의 진상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10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전 세계가 대규모 불황에 신음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 세계 대공황으로 미국 국내에서만도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으며 미국 전역에서 실업자가 넘쳐났다. 또 이 소동으로 1만 6,000개나 된 은행이 도산 위기에 몰렸다. 이때 록펠러를 비롯한 금융자본가들은 도산한 기업과 은행 중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을 헐값에 사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경제의 부침은 통화 공급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화 공급량을 조정하는 권한을 가진 중앙은행이 사익 추구에 몰두하는 특정 그룹의 지시를 받고 정책을 결정한다면 반드시 그 그룹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대중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 지폐를 원가에 사들여 이자까지 붙여 정부에 빌려준다
사립 은행이 중앙은행 역할을 할 때 발생하는 폐해는 특정 세력이 경제를 멋대로 좌우한다는 점도 있지만, 그 밖에 점 더 커다란 문제가 있다. '불량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 독립국들의 중앙은행은 통화발행권을 갖고 있다. 이것이 일반대중 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특권에 따라 중앙은행은 국가의 조폐국이 인쇄한 지폐를 제작 원가나 다름없는 가격에 사들인다. 그러면 정부는 중앙은행으로부터 액면가에 그 지폐를 빌린다. 그 결과 이자 지급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리사욕에 불타는 자본가들과 양심 있는 정치가들은 통화 발행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다. 미국에서도 건국 이래 8차례에 걸쳐 통화발행권이 양자 사이를 오갔는데, 현재는 자본가들이 1913년 이래 단물을 빨고 있다. 이 통화 발행권이야말로 금융 자본가들이 그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독립한 나라의 통화 발행 권리를 역사상 가장 처음 획득한 곳은 1694년에 시작된 영국은행이다. 이 영국은행도 결국은 유럽의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로스차일드의 지배 아래 들어가고 만다. 지금은 구미뿐만 아니라 선진국, 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모든 독립 국가의 중앙은행이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러한 사립 중앙은행의 기원은 중세 영국에서 시작된다.
◇ 은행의 발생과 중앙은행 탄생의 경위
은행은 고대로부터 존재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은행의 출발점은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골드스미스(금 세공인)다. 일반인들이 자신이 소유한 금괴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골드스미스의 금고에 맡겼다. 그러면 골드스미스는 금괴를 맡았다는 증거로 예탁 증서를 한 장 발행한다. 사람들은 무거운 금괴를 들고 다니는 대신 이 예탁 증서를 가지고 다니며 매매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골드스미스는 처음에는 사람들로부터 금괴를 맡고 그 분량만큼의 예탁 증서를 발행한다. 이것이 은행의 시초다.
이 은행의 기원에서 민간업자가 자신이 맡은 금괴의 양에 따라 발생하던 예탁 증서가 바로 초기의 화폐다. 업자에 따라 금액과 디자인이 제각각이었다. 그 예탁 증서로 언제라도 금괴와 교환할 수 있었다. 금괴를 맡긴 손님이 금괴를 되돌려달라고 요구하면 언제라도 돌려줄 수 있도록 자신이 보유하는 금괴 액수 이상의 예탁 증서는 발행하지 않았다.
이윽고 골드스미스들은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금괴 반환을 요구하는 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또 자신이 발행한 금괴 예탁 증서의 총액을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결국 그들은 비밀리에 자신이 보유한 금괴 이상의 예탁 증서를 발행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거액의 부를 얻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맡긴 금괴를 기반으로 그 몇 배나 되는 금액을 빌려준 것이니,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지만 그 이익은 엄청났다. 만약 일반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빌려주고 이에 대해 요금을 받는다면 사기죄로 쇠고랑을 찰 것이다. 법률이 은행에만 허가를 내준 천하 공인의 사기 행위는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뉴욕의 번화가의 일등지에는 거의 반드시 은행이 있다. 이는 사기적인 상업 행위로 얻은 이익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사립 은행이 국가의 중앙은행으로서 공식적으로 통화 발행권을 가지게 된 것은 1694년에 설립된 영국은행이 그 시초였다. 네덜란드나 프랑스 등과 전쟁을 계속하던 영국은 이 이상 자신들의 영지에서 세금을 올릴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시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월리엄3세는 통화 발행권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전쟁 비용을 은행에 의존했으며, 그 대가로 그때까지 제각각이었던 통화를 하나로 통일하고 그 발행권을 영국은행만으로 제한한다는 특허장을 준 것이다. 돈이 필요하다면 국왕인 자신이 직접 돈을 찍어내면 그만일 터인데 그러지 못했던 까닭은 골드스미스 이래의 사회 통념이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통례상 시중의 은행에서 지폐를 발행해 왔기 때문에 월리엄 3세는 자신이 지폐를 발행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로스차일드 "내게 국가의 통화 발행권을 달라!"
통화를 발생하는 것 자체는 국가든 사기업이든 공급량 조절에 실수 하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다. 사기업이 통화를 발행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국가로부터 이자를 받기 때문이다. 원가에 구입한 지폐를(일본은행권은 액면의 대소에 관계없이 25엔이다), 국가에는 액면가에 팔고 그것도 모자라 이자까지 받으니 그 이익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일본을 포함해 미국 이외의 나라에 관해서는 자료가 없다. 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자금의 출처가 불명확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그 이자를 연방의 개인 소득세로 지급한다.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세금이 FRB에 이자를 주는데 쓰이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낭비며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통화 발행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유럽의 모든 중앙은행을 지배하는 계기를 만든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조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다. 그는 자신의 다섯 아들을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에 보내 그곳에서 중앙은행을 만들게 함으로써 로스차일드 번영의 기초를 만든 인물이다.
이런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내게 국가의 통화 공급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 그러면 누가 법률을 만들든 상관없다." 영국은행을 통해 이 특권의 달콤함을 깨달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럽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을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메이지 유신을 마치고 개국의 에너지로 불타오르던 젊은이들이 당시 최신 문화를 자랑하던 유럽을 찾아갔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 은행 제도를 포함한 금융 제도를 비롯해 수많은 성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문명개화의 향기에 흠뻑 취한 유학생들은 귀국후 일본의 제도를 정비하는데 공헌한다. 따라서 당연한 일이지만 은행 제도를 포함한 신정부의 모든 시스템은 유럽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유럽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설립한 일본 최초의 은행인 국립은행은 이름과는 달리 순수한 민간 조직이었지만 통화 발행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천하 공인의 사기를 인정받은 사업의 달콤함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했던 모양이다. 1897년까지 3년간 153개에 이르는 국립은행이 만들어졌고, 모든 은행이 지폐를 발생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통화 발행 특권은 1882년에 일본은행 조례가 제정되어 일본은행이 설립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153개에 이르는 민간 은행 난립의 계기가 된 국립은행 조례를 만든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그는 미국의 시스템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는데, 중앙은행만이 가지는 통화 발행권을 은행이라는 조직이 가지는 일반적인 권리로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 기쿠카와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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