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기절초풍할 미국의 실태 2
※ 독후감
저자는, 금융자본가들은 전쟁을 일으켜 아군과 적군을 도와 큰 돈을 벌고 있다고 하고 있다. 1, 2차 대전, 베트남, 한국 전쟁의 뒤에는 소위 '죽음의 상인'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미연방은행은,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정부기관인 것처럼 '연방'이란 이름을 붙이고 대통령이 의장을 임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 금융자본가들은 전세계의 중앙은행을 장악하고 있고 중앙은행을 만들지 않은 국가를 '불량국가'라며 공격하고 있다.
화폐발행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며 정부 통제하에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국가의 화폐발행권을 민간인이 갖고 있게되면 그 국가나 국민들은 그들의 노예가 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게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민간인들인 국제 금융자본가들이 화폐발행권을 장악하고 미국과 세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돈만 아는 죽음의 전쟁 상인들이 조폭이 되어 국가와 세계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황폐화 되고, 일반 대중들은 재산과 건강을 잃게 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생활건강연구가 생태농부
제2장 기절초풍할 미국의 실태 2
◇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버는 은행가들
전쟁을 돈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커다란 이익을 보는 곳이 있다. 바로 은행이다. 은행은 전쟁 전과 전쟁 중에 필요한 경비를 당사국에 조달하고 전쟁 뒤에는 패전국의 황폐화된 국토와 경제를 부흥시키는 사업에 돈을 빌려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을 수행하려면 막대한 경비가 들어간다. 은행은 전쟁 당사자를 상대로 전쟁 비용을 조달해주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례다. 어느 쪽이 이기든 이익을 내는 것이다.
금융 자본가에게 전쟁만큼 커다란 이익을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 구미에서 발생한 전쟁의 뒷면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부터 이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된 1913년 이후 미국이 관련된 세 가지 전쟁, 즉 제1차대전과 제2차대전, 베트남 전쟁을 예로 들어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제1차대전으로 돈을 번 은행가들 -루시타니아호 사건
미국에는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제창한 먼로주의라는 일종의 고립주의 외교 정책이 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 의회는 남북 아메리카 대륙 이외 지역에 대한 군대 파병을 허가하지 않았다. 참고로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까지 지속된 이 먼로주의는 1823년에 먼로가 의회의 연두 교서 연설에서 발표한 것인데, 사실 그 속에 숨겨진 본심은 유럽 국가의 식미지였던 중남미에 미국도 진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전쟁이 계속되던 중남미 국가의 종주국인 유럽 국가들에 "미국은 유럽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간섭하지 않을테니 그 대신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너희도 간섭하지 마라."라는 이른바 미국-유럽 상호 불간섭 약속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중남미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1914년에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제1차대전은 기본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 대 독일의 전쟁이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월슨은 중립을 선언했다. 이는 사실 표면적인 자세에 불과했다. 수면 아래에서는 외교 문제 담당인 에드워드 멘델 하우스에게 명령해 참전의 구실을 찾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하우스와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에드워드 그레이 경의 대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을 보면, 그래이 경이 "만약 미국인을 태우고 대서양을 항해하는 역객선을 독일이 침몰시키다면 미국 국민은 어떻게 반응할까?"라고 묻자 하우스는 "그 정도면 불같은 분노가 미국 전역을 휩쓸어 우리가 전쟁에 돌입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지."라고 대답했다.
당시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던 영국 선적의 호화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1,989명이 승객을 싣고 뉴욕 시의 51번 부두를 출항했다. 그리고 엿새 후인 1915년 5월 7일, 그 우아한 거체는 아일랜드 앞 바다 15킬로미터 지점에서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해 1,198명이 사망자와 함께 바닷 속으로 가라 앉았다. 그러나 이 거대 호화 여객선의 침몰이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했고, 결국 미국 의회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2년 뒤인 1917년이었다.
미국이 참전하도록 뒤에서 손을 쓴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로스차일드다. 그들은 독일의 파죽직와도 같은 공격에 계속 밀리는 영국 정부에 "미국을 연합국 편으로 끌어들여 참전시키면 형세를 역전할 수 있소. 우리가 힘을 쓸 테니 어떻소?"라고 제안했다. 다만 여기에는 '미국의 참전을 돕는 대신 중동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데 협력할 것'이라는 조건이 달렸다.
1917년 4월, 미국은 드디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같은 해 11월,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제임스 밸푸어가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지원한다.'라는 각서(밸푸어 선언)을 라이어넬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냈다. 로스차일드는 제2차대전이 끝난 뒤 영국 정부에 이 선언서를 실천하라고 압박했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건설되었다. 전쟁이 끝난지 3년 뒤, 그리고 밸푸어 선언으로부터 31년이 지난 1948년 5월이었다.
제1차대전으로 존 D. 록펠러가 거머쥔 이익은 당시 금액으로 2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를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1조 9,000달러나 된다고 한다. 반면에 미국 정부는 전쟁 비용으로 임시 지출한 300억 달러를 연방은행으로부터 이자까지 붙여 빌렸다. 루시타니아호 사건을 통해 그들은 전쟁 반대 여론을 반전시키려면 더 충격적인 비극이 필요함을 깨달았고, 이는 진주만 공격으로 이어졌다.
2. 제2차대전으로 돈을 번 은행가들 - 진주만 공격
제2차대전 전에 미국에서는 국민의 83%가 참전을 반대했다. 당시 루스벨트는 은행가들의 뜻대로 몰래 참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책략에 빠져든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루스벨트의 전시 비서였던 헨리L. 스팀슨이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기 2주일 전인 1941년 11월 25일에 루스벨트와 나눈 대화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때 루스벨트는 "문제는 어떻게 그놈들이 먼저 발포를 하도록 만드는가 하는 거야. 일본이 먼저 공격해주는게 바람직하지. 그래야 어느 쪽이 침략국인지 명확해지거든."이라고 비서에게 말했다. 또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기 사흘 전인 12월 4일에 루스벨트는 일본의 항모 기동부대가 하와이 방면을 향해중이라는 첩보국 연락을 받았지만 그 보고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태평양 함대에는 알리지 않았다.
이 일은 그가 얼마나 전쟁 돌입을 바랐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자국 병사들의 목숨조차도 생각지 않는 금융자본가들의 정신구조 또한 말해준다. 그때까지 참전을 반대했던 여론은 12월 7일의 진주만 공격 직후 단숨에 뒤바뀌었다. 100만 명의 젊은이들이 병역에 지원했으며, 미국은 총력을 기울여 전쟁에 돌입했다.
유럽 전선에서 펼쳐진 나치스 독일과의 전쟁에서는 록펠러가 지배하는 스텐더드 석유가 적국인 나치스에 비행기용 특수 연료를 20억 달러어치나 공급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이 특수 연료가 없었다면 나치스가 자랑하던 명전투기 메서슈미트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부시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가 부사장으로 일했던 뉴욕 유니언 은행은 제2차대전 전부터 나치스와 거래를 했다.
그들은 나치스의 예금을 관리했으며, 유럽 전선에서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히틀러에게 융자를 계속했다.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단속을 당하기 전까지 융자를 멈추지 않은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3. 베트남 전쟁으로 돈을 번 은행가들 - 통킹만 사건
베트남 전쟁에는 미국 측에서 5만 8,000명, 베트남 측에서 100만 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나왔다. 전쟁이 끝난 뒤 30년이 지난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이 전쟁은 양국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이 전쟁의 본격적인 계기는 1964년에 발생한 통킹만 사건이었다. 북베트남 해군 어뢰정이 미국 함선을 공격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으로, 이에 분노한 미국이 전쟁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를 원하는 존슨 정권이 꾸민 것으로, 역시 완전히 날조된 사건이었다. 1971년에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국방부 기밀 문서를 입수해 그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라마는 그 기사가 사실임을 1995년에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미국의 금융자본가들과 군산복합체는 자국민을 희생시킴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부추긴다. 위의 사건들을 보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하는 작전이 다양화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2001년에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 또한 이 작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 나라의 정규균이 선전포고도 없이 외국을 무력 침공한다는 것은 국제법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런데도 90%에 가까운 미국 국민이 전쟁을 승인했던 까닭은, 국제 금융자본가의 지시를 받고 부시 정권과 결탁한 언론이 국민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후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정설이 되었다. 국제 금융자본가들은 어떻게든 전쟁을 시작하려고 획책한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이번에는 금융자본가들과 군수산업, 군이 한통속이 되어 가능한 전쟁을 오래 지속하려고 애쓴다. 그 수법을 잠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베트남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수렁에 빠진 미국이 빠져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고들 말한다. 사실 미군은 처음부터 각종 족쇄를 찬 상태로 전쟁을 했다. 처음부터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라 전쟁을 장기화시키려 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조건으로 싸웠던 것이다. 물론 언론은 그런 사실은 조금도 기사화하지 않았다.
뉴스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시민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믿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1985년에 공개된 국방부 서류에 나와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베트남 군수 물자 중 80%는 소련이 제공했다. 그런데 소련이 군수 공장을 설립하고 베트남에 보내기 위한 군수 물자를 구입하는데 쓴 자금은 놀랍게도 록펠러가 지배하는 체이스 은행이 융자해준 것이다. 놀랄 일은 또 있다. 1967년에 린든 존슨 대통령이 소련에 '경제 봉쇄 해제'라는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이는 소련의 전쟁 물자 입수를 돕기 위해서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 이해하지 못할 베트남 전쟁의 전투 규약
베트남 전생 당시 미군의 현지 부대가 군의 상층부로부터 받은 세가지 전투 규약이 있었다.
1. 북베트남군의 대공 미사일 기지가 완전히 공사를 끝내 가동을 시작하기 전에 폭격을 해서는 안 된다.
2. 국경을 넘어서 라오스나 캄보디아 영내에 있는 북베트남군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3. 전황을 좌우하는 중요한 공격 목표는 군 상층부의 허가 없이는 공격할 수 없다.
군의 상층부가 미군 병사에게 준수를 요구하면 보낸 이 전투 규약은 적국인 베트남에도 전달되었다. 미국은 적에게 완전히 파악당한 상태로 싸웠던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장 현지의 일반 민중은 괴로워진다. 한편 군수산업은 더욱 피둥피둥 살이 찌며, 금융자본가들은 전쟁 비용이 늘어날수록 큰 이익을 본다. 2003년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이라크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언론이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조기 해결을 바라지 않는 듯한 징후를 여기저기에서 포착할 수 있었다. 가령 2005년 9월 19일에 이라크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그 좋은 예다. 영국이 통치하던 이라크 남부의 바스라 지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총을 난사해 일반인들을 죽인 두 아랍인이 현지 경찰에 잡혔다. 체포한 뒤 조사해보니 그 사내들은 아랍인으로 변장한 영국 비밀 정보부의 사람들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얼마 후 영국 육군은 바스라 경찰에 연락해 그 두 사람을 넘기도록 요구했다.
이라크 당국은 이를 무시하고 두 사람을 경찰서 내부의 구치소에 수감했다. 그러자 이튿날 아침 헬리콥터의 호위를 받으며 영국 전차 10대가 나타나 구치소를 박살냈다. 그리고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1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도망치는 사이에 그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것이다. 이런 일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역시 007을 탄생시킨 나라인 만큼 대담무쌍하고 행동적이다.
또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 내부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했는데, 전 CIA요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라크의 2대 세력인 시아파와 수니파가 싸우도록 만들기 위해 구미의 첩보 조직(미국의 CIA나 영국의 SIS)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두 사건은 때마침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이라크의 2대 세력인 시아파와 수니파를 싸우게 먼들려는 책략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라크 침공 초기에는 미군 준둔을 연장시키고 이라크 국내의 인프라를 파괴할 목적으로 여기저기에서 폭탄 테러가 있어났다. 이렇듯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미군 사상자가 나날이 늘어난 결과,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미군을 즉시 철수시키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민주당 전체가 즉시 철수 또는 기한 내 철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편 부시를 포함해 공화당은 군대를 철수시킬 예정이 전혀 없다. 줄리아니와 맥케인을 포함해 대통령 예비 선거에 나온 공화당 후보들 대부분은 국민의 뜻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이라크에서 군을 철수시킬 생각이 조금도 없는 모양이다. '국제 금융자본가'들이 전쟁을 조장하는 까닭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서 얻는 이익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들의 세계 통일 정부 수립이기 때문이다. 전란이 장기화되면 민중들이 평화를 갈구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따라서 금융자본가 들이 세계 평화를 앞세우며 추진하는 세계 통일 정부 수립 활동이 더욱 원활히 전개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구의 인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지구의 인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은 학자들만이 주장이 아니며 상당히 일반적으로 인지되고 있다. 전쟁은 인구를 조금이라도 줄인다는 방침을 세운 자본가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20세기 들어와 인구 폭발이라고 할 정도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 7월 지구의 추정 인구는 66억 명이다. 하나의 생태계로서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에는 제한이 있다. 이대로 인구가 계속 들어난다면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자원을 모두 소비해버릴 것이다. 인류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 정도가 적정 인구인지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지만, 생태학자들이 일반적인 의견은 20억 혹은 그 이하다. 금융자본가들의 목표는 인구의 80%을 줄여 20%만 남기는 것이다. 현재 인구의 5분의 4를 줄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구 감소 계획의 일환으로 일종의 불치병의 원인이되는 바이러스를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뿌린다는 설도 있을 정도다.
◇ 미국을 망치는 악의 원흉 2 - 연방준비제도
지금까지 미국을 내부에서 좀먹는 원흉 중 하나인 군산복합체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이번에 소개할 또 다른 원흉은 연방준비제도다. 국제 금융자본가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지만 미국에는 가장 큰 악의 원흉이다. 이미 소개했듯이 많은 정치가들이 이 제도의 악마적인 성질을 간파하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이미 언론을 장악한 탓인지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의 경고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미국 국민의 대부분은 자기 나라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이 100% 사적 기관이란 사실조차 모른다. 하물며 그 주주의 대부분이 유럽의 사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이스 맥파든의 역사적인 의회 연설로부터 반세기가 넘게 지난 오늘날의 미국 경제는 파산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이미 말했듯이 국민도 매년 가난해지고 있다. 그가 예견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20세기 초엽투터 미국의 경제 발전의 토대였던 수많은 중산 계급이 점검 가난해져, 지금은 사회 구성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5% 정도의 가진자와 95%의 가지지 못한 자라는 두 계층으로 나뉜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브프라임론은 신용 조사나 재산 조사를 생략하고 여기에 보증금이 없어도 집을 살 수 있는 대출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신청만 하면 누구나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이 서브프라임론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출인데, 그 이유는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위험한 대출 상품을 팔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은 가난한 국민이 늘어났다는 증거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런 계층을 상대하지 않으면 예전과 같은 주택 판매량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임을 말해준다. 놀라운 점은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수십만 달러라는 고액을 대출해주면서 10%가 넘는 이자를 붙였다는 사실이다. 처음 5년간의 부족분까지 더해져 상환 액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따라서 매달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에서는 이 대출 상품을 판매하면서 "매달 상환액이 급격히 늘어나는 6년차가 되기 이전에 집을 바꾸면 계속 낮은 금리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그때쯤에는 집값이 올라 집을 판 차액이 그대로 수중에 남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라는 말로 구슬렸다. 분명히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했다면 어떻게든 됐겠지만, 문제는 2005년 무렵부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사이에 계약된 이런 유형의 대출 중 절반은 이미 상환 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이 때문에 2006년 1년 동안만 해도 40만 호가 압류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가진 자는 더욱 재산이 늘어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반대로 부채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 이 악마와도 같은 제도는 합중국의 국민을 빈곤에 빠뜨릴 것입니다."라고 말한 맥파든은 76년 전에 미국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예언했던 것이다.
◇ 연방준비은행 제도를 설립한 교묘한 수법
미국에서는 독립 이후 19세기가 끝날 때까지 로스차일드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중앙은행을 설립하려는 계획을 여러차례 세웠지만 양식 있는 정치가들의 노력으로 번번히 좌절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되자 JP. 모건과 록펠러, 폴 위버그, 로스차일드 이렇게 네 사람이 미국의 은행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협의해 다시 중앙은행 설립을 맹세했다.
과거의 쓰디쓴 경험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의회와 국민이 중앙은행 설립을 승낙하지 않을 것은 명백했기 때문에 그들은 한 가지 묘책을 세웠다. 그 무렵 금융계의 일인자로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던 인물은 JP. 모건이었다. 모건은 1907년에 "뉴욕의 한 은행이 자금난에 빠져 파산하기 일보직전이다." 라는 허위 소문을 퍼뜨렸다.
깜짝 놀란 예금자들이 그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 해약을 요구했다. 그 불똥은 다른 은행으로도 튀었고, 많은 은행이 고객에게 돌려줄 예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긴급 매각해 경제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이 소동이 있은지 몇 년 뒤, <라이프>지는 "모건 일당은 이 소동이 더욱 급격하게 진행되도록 빈틈없이 행동했다."라고 썼다. 이 혼란 사건은 곧 의회에서 문제가 되었다. 상원의원인 넬슨 올드리치가 의장이 된 조사위원회가 국회에 설치되었다.
얼마 후 '경제와 금융의 안정을 위해서는 중앙은행 설립이 필요하다.'라고 진언한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되었다. 참고로 이 올드리치 사원의원은 나중에 결혼을 통해 록펠러 가문의 일원이 된다. 그의 딸인 애비가 존 D. 록펠러 2세와 결혼한 것이다. 이들 부부는 훗날 부통령이 되는 넬슨과 현대 미국의 재왕인 데이비드 D. 록펠러를 포함한 여섯 아이를 낳았다.
이렇게 지반 다지기를 한 뒤, 1910년에 은행가들만이 모여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은 궁극의 중앙은행 제도를 입안한다. 이 때도 그들은 참으로 교묘한 수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이 안건을 1913년에 올드리치 의원에게 전달해 12월 22일에 의회에 제출시켰다. 그러고는 반대파 의원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휴가로 자리를 비운 12월 23일에 이 안건을 체결시키고 이튿날 대통령 월슨에게 중앙은행 설립을 공표하게 만든 것이다.
이 연방준비제도에는 은행가들의 지혜가 모여 있다. 두 번 다시 통화 발행의 권한을 빼앗기지 않도록 체계를 구축하고, 그린백스(링컨이 중앙은행을 거치지 않고 인쇄한 지폐)와 같은 통화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그들은 여러가지 궁리를 짜냈다.
먼저 그들은 이름에 '연방'을 붙여서 국가 기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또 전국 12개소에 있는 연방준비은행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만들고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의장의 임명권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정부에는 의장을 인선할 권한이 없다. 대통령은 그저 넘겨받은 종이에 적혀 있는 이름을 읽을 뿐이다. 현재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을 결정하는 사람은 데이비드 록펠러라고 한다. 정부는 의장을 인선할 권한은커녕 파면할 권한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은 일단 임명되면 자신의 뜻에 따라 사퇴하거나 임기인 8년이 지나기까지는 아무리 실책을 많이 해도, 설령 전 세계를 대공황 속으로 빠트리더라도 교체할 수가 없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그만두라고 지시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연방준비은행은 겉으로는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실정은 완전히 다르다. 현재의 일본은행도 그렇게 되었는지 100%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연방준비은행은 100% 사립기업이다. 그런데도 세금 신고와 회계 보고를 면제받으며 주주의 이름도 공표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의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인 것이다. 그야말로 구름 위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은행가들은 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하면서 치밀한 구상으로 일반인들이 연방준비은행을 연방 정부의 일부로 착각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여기에 언론들이 이 사실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이 완전한 사기업임을 아는 미국인은 매우 드믄 것이 현실이다.
◇ '불량국가'란 중앙은행을 가지지 않은 정상적인 나라?
전 세계에서 정부가 중앙은행을 허가하지 않은 나라는 동시다발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9개국이 있었다. 쿠바, 북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시리아, 수단, 리비아, 파키스탄이다. 묘하게도 제2기 클린턴 정권에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이 된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1997년 4월 28일에 의회 연설에서 '불량국가'라고 부르며 비난한 나라와 일치한다.
2001년에 동시다발 테러 이후 부시가 사용해 일약 유명해진 '불량국가'라는 말은 사실 클린턴 시대에 이미 사용되었던 것이다. 사건 직후에 부시가 말한 '불량국가'는 6개국으로 줄었는데, 위의 9개국 중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이 빠졌다. 아프가니스탄은 2002년에, 이라크에서는 2003년에 중앙은행이 설립되었다. 이를 볼 때 2001년 부시가 연설을 한 시점에 이미 이 두 나라의 중앙은행 설립이 기정사실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머지 한 나라인 파키스탄의 경우, 중앙은행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 할 수 없지만아직 설립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부시는 왜 파키스탄을 불량국가에서 제외했을까? 파키스탄은 항상 정국이 불안정해 현재의 무샤라프 정권도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미국은 동시다발 테러와 관련해 무샤라프 정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파키스탄을 '불량국가'의 일원으로 거명한다면 분노한 민중에 무샤라프 정권이 무너질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 기쿠카와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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