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서/세계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

제1장. 국제 금융 자본가들의 책략을 간파한 선인들의 경고 2

생활건강 연구가 2019. 12. 5. 07:23

제1장.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책략을 간파한 선인들의 경고 2

 

 ※ 독후감

 

 저자는, 현재 미국은 나치스의 부활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 전체주의 국가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9.11테러 후, 미국판 게쉬타포라고 할 수 있는 '국토안전보장부'를 설립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미국 애국법'등을 만들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거의 빼앗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중에는 검증이 안 된 백신을 국민들에게 강제 접종할 권한까지 미국 정부가 갖게 되었다. 미국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나치스의 대중 조작법을 미국 정부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미국은 수감자수나 수감자율이 세계1위며,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경찰국가가 되어버렸다.


 미국이 이렇게 변질하게 된 원인은, 국가 통화발행권이 금융자본가들이 탈취하여 미국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하지 않고 빌려주며,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큰돈을 벌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뿐이다. 오직 돈에 대한 탐욕만이 그들의 속성이다.


 이것을 잘 아는 미국의 선인들은, 통화발행권이 금융자본가에게 넘어간 것을 크게 우려했으며, 은행과 재벌들에 의해 국민의 재산이 약탈되고 미국정부는 파산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저자의 이런 날카로운 지적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순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현재 국가의 통화발행권은 세계 몇나라만 제외하고, 대부분 민간인인 '금융자본가'들이 장악하고 있다. 민주국가는 허울좋은 이름이고, 국가는 금융자본가를 보호하는 권력이 되었으며, 국민들은 그들의 노예로 전락된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언론 방송을 장악했기에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생활건강연구가  생태농부  


제1장.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책략을 간파한 선인들의 경고 2


  미국이 계승한 나치스의 대중 조작법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스 독일은 미국과 소련에 앞서 실용 로켓인 V2 발사에 성공했다. 또 텔레비전을 세계 최초로 실용화해 베를린에서 방송을 시작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진보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독일 국민을 유도할 목적으로 심리학을 응용한 연구도 하고 있었다.


 그 대중 조작의 중심 기관은 계몽선전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은 미국의 한 정치학자가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독일의 민주 정치를 본받아야 한다."라고 찬사를 보냈을 정도의 민주 국가였다. 그랬던 독일이 2~3년 사이에 나치당의 독재 체제 속에 폭주하고 말았는데, 그 배경에는 히틀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계몽선전부 장관이 된 요제프 괴벨스의 힘이 컸다.


 신문과 라디오(당시 텔레비전은 아직 일반 가정에 보급되지 않았다)뿐만 아니라 영화와 출판물 그리고 예술까지 모든 매체를 활용한 그의 수법은 대중 선전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후 소련의 공산주의 프로파간다나 제국주의적 행동을 추진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대중 유도 전략에 적극적으로 이용되었을 정도다.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난 후, 미국은 나치스의 부활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체주의 국가적 경향이 강해졌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데는 괴벨스가 개발한 대중 유도 전략의 힘이 컸다.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한 직후 1개월 동안 부시 정권이 테러리스트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의회에 제출한 '미국 애국법'을 비롯한 일련의 법안은 미국 헌법이 보장하던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거의 빼앗아갔다.


 이 사건은 1930년대에 독일에서 공산당이 세력을 크게 확장했을 때와 매우 양상이 비슷하다. 히틀러는 독일 국회 의사당 방화 사건을 공산당의 범행이라고 단정(이 방화 사건은 히틀러의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다)하고, 공산당의 마수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1919년)에 재정된 바이마르 헌법이 보장하던 기본적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는 거의 박탈당했는데, 이 두 사건의 과정이 매우 비슷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나치스는 독일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이듬해인 1934년에는 게슈타포가 설립되면서 공포 정치가 시작되었다. 5년 뒤의 제2차 세계대전을 향해 일당 독재의 전제 정치가 무서운 기세로 진행되었다.


  ◇ 중국보다 심하다? 경찰국가 미국의 인권 침해


 한편 부시는 테러 사건 직후에 미국판 게슈타포라고 할 수 있는 '국토안전보장부'를 설립했다. 이 기관은 연안 경비대와 항공 관제국, 시크리트 서비스, 국경 경비대를 하나로 뭉친 것으로, 크기에서 국방부에 다음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조직이다. 대통령이 직접 내리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24시간 체제로 활동한다.


 대통령이 일반 회의장에서 연설을 할 때 전쟁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던 학생들을 구속하고, 자동차 후면 범퍼에 반 부시 스티커를 붙인 사람을 조사했으며, 반전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체포하는 등 이들이 미국 전역에서 벌인 명백한 인권 침해 행동은 그 예를 일일이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2000년 3월에는 한 남성이 사우스다코타주에서 대통령의 생명을 위협한 죄로 체포당해 2002년 9월부터 37개월 동안 연방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그의 죄목은 어처구니없게도 바에서 술을 마시며 농담 삼아 "어쩌면 신은 부시를 화형에 처함으로써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연방 관청뿐만 아니라 지방 경찰까지도 일반 민중에게 강권을 행사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을 정도니, 이쯤이면 미국 전체가 경찰국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부시가 정권을 잡은 이후 미국이 극단적으로 변한 것이다. 부시 정권은 동시다발 테러 사건이 발생한 뒤 한달 반 동안 342항으로 구성된 미국 애국법을 의회에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법안을 만들었다.


 그 결과 시미의 기본적인 인권은 박탈당했다. 1년 뒤인 2002년 9월 5일, 뉴욕의 지역지인 <뉴스데이>에는 "부시 정권이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래 수많은 인권을 박탈하다."라는 제목으로 다믐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동시다발 테러 이후 법으로 제한된 자유


 * 결사의 자유 : 정부는 테러 조사라는 명목이 없어도 도청 등을 포함한 방법으로 종교상의 조직과 정치상의 조직을 감시할 수 있다.

 * 정보의 자유 : 정부는 한 때 공개되었던 이민자 청문회를 비공개로 바꾸었다. 죄 없는 수많은 사람을 현재 비밀리에 구류하고 있으며, 각 관청에서 정보 공개법을 따르지 않도록 지시했다.

 * 언론의 자유 : 정부가 테러 조사와 관련해 정보나 기록 제출을 요구한 사실을 도서관원이나 각종 기록 보관 담당이 누군가에게 말하면 정부는 그들을 기소할 수 있다.

 * 법적 변호권 : 정부는 연방 형무소에 수감된 사람과 그의 변호사가 나누는 대화를 도청할 수 있다.

 * 부당한 조사를 받지 않을 권리 : 정부는 테러 조사라는 명목으로 가택을 수사하고 명확한 이유가 없어도 서류나 소지품을 압수할 수 있다.

 * 신속한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 : 정부는 미국 국민을 재판 없이도 무기한으로 구류할 수 있다.

 * 속박되지 않을 권리 : 미국 국민은 죄가 없어도, 또 증인의 증언이 없어도 수감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은 이미 자유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민망해졌다. 또 부시 정권은 의회에 제출한 법안뿐만 아니라 의회가 대통령에게 부여한 대통령령이라고 부르는, 원래는 의회가 가진 입법 특허권을 이용하고 있다. 부시가 세상에 공표한 각종 법령을 살펴보면 무서운 내용이 담겨 있다.


 부시의 독재적인 대통령령


 * 정부에 각종 교통수단을 관리, 지배할 권한을 부여했다.(댜통령령 10999)

 * 일반 시민을 동원해 정부의 감시 아래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작업시킬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했다.(대통령령11000)

 * 대통령이 자신의 판단으로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의회가 그 선언에 대해 6개월 동안 조사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대통령령11921)

 * 아직 테스트를 받지 않은 백신을 국민에게 강제로 접종시킬 권리를 정부에 부여하는 내용이다.(상원법안1873)


 무서운 법안은 이 밖에도 또 있다. 한 하원 의원은 일반 시민에게 몸에 도청기를 달아 이웃을 염탐할 의무를 지우고 이를 거부 할 때는 최소 2년의 실형을 살게 한다는 내용의 법안(HR1528)을 제출했다. 또 재무부는 2005년 8월 15일자 문서에서 긴급 사태라고 판단될 때는 국민의 통화와 금, 은, 그밖의 귀금속을 포함한 금융 재산을 거뒤들일 권리가 있다고 명기했다.


 이런 정부의 횡포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죄 없는 일반 대중이다. 미국의 비영리 조사 단체가 2008녀 2월 말에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0명 중 한 명은 형무소에 있다고 한다. 또 미국의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올해 처음으로 수감된 사람의 수가 2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50만 명인 중국과 89만 명인 러시아를 제치고 미국이 당당히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이를 인구 10만 명당의 수로 비교해보면 더욱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1위는 역시 미국으로 10만 명당 750명이며, 2위는 러시아 628명, 3위는 벨로루시 426명이다. 인구가 많은 중국은 순위에서 사라진다. 민주 국가임을 내세우는 미국이 수감자 수와 수감률 모두 세계1위라니, 경찰국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를 인종별로 살펴보면 흑인 남성은 15명에 한 명, 히스패닉은 36명에 한 명이 수감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20세부터 34세의 흑인 남성은 무려 9명 중 한 명이 현재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 이 연령대는 결혼 적령기라고 할 수 있으므로 흑인 여성들은 평생의 반려자를 찾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상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경찰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건국 당시의 이념은 이와는 전혀 달랐다.


  ◇ 전쟁은 은행가들이 만들어낸다


 미국이 독립을 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특히 영국의 과중한 세금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영국 국왕 조지 3세는 거듭되는 해외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영국은행에서 빌렸는데,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른 빚을 갚기 위해 식민지인 미국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 쥐어짜려 했다.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진상은 조금 다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금융을 조종하는 마의 손에 일반 시민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식민지에서 거짓 없는 금융제도를 운영하려 했으나 영국 국왕 조지 3세는 이를 금지했다. 아마도 이것이 독립 운동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 무렵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영국의 식민지에서는 현지에서 발행해 식민지 안에서만 통용되는 화폐가 유통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지 3세는 그 통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그 대신 영국은행이 발생하는 통화를 이자까지 붙여서 구입해 사용하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때까지 활기가 넘치던 식민지 경제는 순식간에 침체되었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물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건전한 정치가와 금전적인 이익밖에 생각하지 않는 유럽 은행가들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독립의 주역들은 영국 국내에서 금융자본가들이 일으킨 폐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미국 헌법의 주된 정신인 주권재민을 강하게 강조하며 헌법 초안의 대부분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버너 모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자본가들은 그들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일반 시민을 노예처럼 취급하고자 분투,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과거에 유럽에서 그렇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부의 힘으로 그들을 적당한 영역에 가둬 놓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도 이렇게 충고했다. "만약 미국 국민이 통화의 발행을 사립은행에 맡겨버린다면 먼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그 다음에는 디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힘들게 노력해 얻은 신대륙에서 그들의 아이들이 집을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게 될 때까지 은행과 기업들이 사람들의 재산을 약탈할 것이다."


 미국이 독립할 무렵에는 아직 록페러 가문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유럽의 금융은 이미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제퍼슨은 그 폐해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 금융자본가들은 눈곱만큼도 신용하지 않았다. "주는 자는 받는 자의 위에 선다. 돈에는 모국이 없다. 금융자본가들은 애국심이 부족하다. 예의도 없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돈이다."


 그는 유럽으로 진군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803년에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미시시피 강 주변 지대를 3억 달러 상당의 금괴를 받고 미국에 팔았다. 한편 로스차일드 일당은 주변의 유럽국가, 즉 프러시아와 스페인, 제정 러시아에 큰 돈을 융자해줘 나폴레옹의 침공에 대항하도록 했다. 결국 나폴레옹이 자기 자금을 모두 써버리고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을 무렵, 유럽 각국의 정부에 남은 것은 거액의 빚뿐이었다.


 그러나 은행가와 관련 기업들은 전쟁 비용 융자와 군수 물자 제공을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었다. 전쟁에는 대량의 군수 물자가 필요하다. 당사자 혹은 당사국에 전쟁 비용을 제공하는 은행과 군수 물자를 제공하는 기업으로서는 이익을 늘릴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 후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탈출해 제기하자 로스차일드 일당은 '이긴 쪽이 상대방의 빚까지 떠안은다'는 조건으로 나폴레옹과 연합국 양쪽에 돈을 빌려주었다. 나폴레옹이 간파했듯이 그들에게 전쟁은 오로지 돈을 벌 절호의 기회일 뿐이다. 그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역사는 밤에 만들어진다"라는 명언이 있는데, "전쟁은 은행가들이 만들어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 연방준비제도가 가져올 폐해를 경고한 현인들


 현재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사회의 황폐화라고 부르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극단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은행이며, 둘째는 이곳을 관리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100%  민간기업이라는 사실이다.


 독립 국가의 중앙은행은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국가기관이어야 한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민간 기업이 갖고 있다면 백해무익한 것이다. 이 제약의 근원인 연방준비제도는 1913년에 입법화되었는데, 설립 초기부터 많은 정치가들이 그 위험성을 여러차례 지적해 왔다.


 * 린드버그의 경고


 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버지는 정치가였다. 1910년대에 미네소타 주에서 공화당 의원으로 선출되어 일하던 그는 금융자본가들의 음모를 깨닫고 이렇게 경고했다. "금융 제도가 연방준지제도이사회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 이사회는 명백히 폭리를 일삼는 집단의 지배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립인 이 이사회의 목적은 단 하나, 다른 사람의 돈을 이용해 최대의 이익을 올리는 것이다."


 그는 책을 두 권 썼다. 1913년에 출판된 <은행, 통화, 머니 트러스트>와 1917년에 출판된 <왜 당신의 나라는 전쟁을 하는가>이다. 이 두 책에서 그는 은행가들의 이익 추구로 일반 민중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후자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은행가들이 전쟁 당사국에 거액을 융자한 것을 비난했다.


 * 연방준비제도를 비판하다 독살당한 맥파든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당선된 공화당 의원으로 1920년대에 의회의 은행, 통화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맥파든이 한 말을 소개한다. 1929년 10월 29일의 월스트리트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2년 6월 10일에 미국 의회에서 한 연설이다. 이 25분간의 연설에서 그는 "이번 세계 대공황이 연방준비은행의 의도로 일어났으며,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월스트리트의 은행가가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유럽의 중앙은행을 이용해 자금을 제공한 결과"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전 세계에 존재했던 수많은 해로운 제도 중에서도 최악의 제도가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그 최악의 제도는 바로 연방준비제도입니다. 이 악마와도 같은 제도는 합중국의 국민을 빈곤에 빠트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회를 조종하는 부유한 탐욕가들은 부패한 책략으로 합중국 정부를 사실상의 파산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해 은행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그 후 정계로 진출해 의원이 된 뒤에도 은행, 통화위원회 의장을 맡았기 때문에 금융의 구조와 문제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또 반유대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그는 평소에도 유대인이 미국 경제를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그렇다면 유대인과 국제 금융자본가는 동의어일까? 국제 금융자본가들은 오로지 돈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종이나 종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 어쨌든 그가 의회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다면 서브프라임 문제로 전 세계의 금융계가 휘청거리는 현재의 상황이 조금은 호전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반골 기질의 인물은, 연방준비은행과 관련된 금융자본가들이 세계 대공황을 일으켰음을 간파하고 연방준비은행에 대한 탄핵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하려 했지만 그 직전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는 이 기념할만한 연설을 한지 4년 뒤인 1936년 10월 1일에 뉴욕시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감기에 걸려 유행성 감기약을 먹은 직후 심장이 멈췄고 결국 이틀 뒤인 10월 3일에 60세의 생애를 마쳤다.


 어쩌면 이것은 감기약을 가장한 독에 암살을 당한 것이 아닐까? 그의 목숨을 노린 사건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워싱턴에서 두 번이나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벗어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택시에서 내릴 때 누군가가 권총으로 그를 저격했지만 다행히 총알이 빗나가 위기를 모면했다. 두 번째는 파티에서 먹은 음식에 독이 들어있었는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의사가 급히 위세척을 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여행 중이라 방심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이 명을 재촉하는 결과가 되었다.


 *  라이트 팻맨


 텍사스 주에서 선출된 민주당 의원으로 1930년대의 의회의 은행, 통화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던 라이트 팻맨의 발언을 소개하겠다. "오늘날의 합중국에는 두 정부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당한 절차로 설립된 정부며, 다른 하나는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통화 발행권을 관리하는 연방준비제도라는 독립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협조성 없는 정부다." 이 또 다른 정부는 과거의 예를 살펴보면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배리 골드워터


 1964년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도 올랐던 상원의원 베리 골드워터는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국제 금융자본가들이 벌이는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회계는 아직도 감사를 받지 않고 있다. 이 이사회는 국회가 통제하지 못하는 존재며, 합중국의 신용과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뿐만 아니라 대전 후에도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악행을 비난하는 정치가가 있었지만 언론이 이를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시민에게는 그 경고와 비난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금융의 키잡이로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해 월스트리트로부터 명지휘관을 의미하는 '마에스트로'라는 칭호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전임자로서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폴 볼커는 이렇게 말했다. "평균적인 중류층 미국인의 생활수준은 틀림없이 하락선을 그리고 있다. (중략) 누구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서브프라임 문제의 발생을 계기로 중류층의 몰락 현상이 표면에 드러났지만 볼커는 이미 30년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브프라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대출은 그린스펀이 현역 시절에 상품화되었다. 문제가 표면화된 뒤에 질문을 받은 그린스펀은 그것이 파탄을 맞이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대출의 내용을 보면 초보자인 나도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전임자가 이 시스템이 가져올 결과를 명확히 알고 있었는데 그가 그 위험성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그의대답은 단순히 변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  기쿠카와 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