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책략을 간파한 선인들의 경고 3
※ 독후감
저자는, 일찌기 아이젠하워는 군산 복합체가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었지만, 오늘날의 미국은 그의 예언대로 그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군사비 지출 세계1위인 미국이 '진짜 불량국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9.11테러는, 냉전 종식으로 국방비와 CIA예산 삭감을 우려한 그들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9.11은 그들에 의해 치밀히 계획된 테러조작이며, 그 1단계로 부시를 부정으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 금융자본가'들이 꾸민 9.11테러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여 석유와 천연가스를 지배하게 되었고,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대폭적인 국방비 증강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테러를 빌미로 미국 애국법을 비롯한 각종 인권제한 법안을 만들고 강제로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국제 금융자본가'들이 세계지배를 위해 인류 노예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백신으로 돈을 벌면서 질병을 확산시키거나, 인구를 조절하거나,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생활건강연구가 생태농부
제1장.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책략을 간파한 선인들의 경고
◇ 군산 복합체를 경고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죄악의 또 따른 근원은 군산 복합체다. 이 괴물의 위험성을 제일 처음 지적한 인물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었다. 제2차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나치스 독일과 싸워 승리를 거둔 그는 그 공적과 꾸밈없는 솔직한 성격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본인은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주위의 추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 새롭게 발흥한 군산 복합체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일찍 눈치 챘을 것이다. 임기 중에는 현역 대통령으로서 여러가지 제약 때문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케네디에게 바통을 넘기기 직전인 1961년 1월 17일에 대통령 관저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사임 연설 속에서 그 위험성을 미국 국민에게 알렸다.
그는 연설 중에 이렇게 말했다.
"이 거대한 군대와 군수 산업의 공동체는 미국이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존재입니다.(중략)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위험성을 내포한 그들의 밀접한 관계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군산 복합체가 불필요한 영향력을 확보해 그것을 의회에 행사하게 될 것이므로 우리 정부의 의회는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커다란 불행을 가져올 그릇된 권력이 증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 복합체가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팔짱만 끼고 지켜봐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경계를 개을리 하지 않는다면, 현명한 시민들은 거대한 군수사업이 공급한 군용기기를 사용한 방위와, 평화로운 방법을 사용한 방위의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평화적인 해결 방법을 이용할 때 안전과 자유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군산 복합체의 위험성을 명확히 경고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우려는 적중하고 말았다. 그가 사임 연설을 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외교 정책은 군과 군수산업의 공통체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이(대통령 집무실) 의자에 앉는 사람이 나만큼 군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아아 신이시여, 이 나라를 지켜주옵서서." 안타깝게도 아이젠하원의 이 기도는 2008년 현재까지 신에게 닿지 않은 듯하다.
진주만을 공격당하기 전까지, 미국은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제창한 미국 - 유럽 상호 불간섭을 기조로한 먼로주의를 외교의 축으로 삼았다. 미국 연방군은 아메리카 대륙 안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국내의 철을 사용해 무기를 잔뜩 생산하기는 했어도 국가의 정책에 끼어들 정도의 무기 병기 제조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2차대전으로 유럽이 전쟁터가 되어 공장이 파괴당하자 상황은 일변했다.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의 국내 산업은 전후 무기 병기의 제조와 판매를 포함해 전 세계의 부흥 수요에 맞춰 풀가동을 시작했다. 결제 통화는 물론 달러였다. 또 석유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록펠러가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한 것이 커다란 영향을 끼쳐 그 후로는 영국의 파운드 대신 미국 달러가 국제 통화의 지위를 획득했다.
◇ 군사비 지출1위 국가인 미국이야말로 '불량국가'
전쟁은 경기를 자극한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으로 일본 경제가 급격히 발전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미국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군수산업 공장과 군사기지, 군사시설이 있다. 즉 국방예산의 증감은 미국의 모든 지역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 미국 국내에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제조업 중 하나인 자동차 제조업은 현재 활기를 잃었다. 비행기 제조를 포함한 무기 병기 제조가 유일하게 활기가 지속되는 산업이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가 군수산업에 의존하는 비율은 매우 높아졌다.
냉전 중에는 소련과 미국이 전 세계의 무기 병기 공급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91년에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독보적인 '죽음의 상인'이 되었다. 참고로 2000년의 무기 판매 수치를 보면 1위인 미국이 186억 달러이고, 2위는 러시아의 77억 달러, 3위는 프랑스의 41억 달러다. 제2차대전 중의 미국은 군비를 증강할 필요가 있어 군수 비용을 계상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거대해진 군수산업을 키우기 위해 군비를 확장할 필요가 있으며 그 때문에 거액의 국방비를 계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차대전 전과 후의 차이를 병력이라는 측면에서 비교해보면, 2차대전 전에는 정규군이 17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정규군만 140만 명이며 여기에 예비역과 주 방위군을 포함하면 250만 명이라는 대병력을 보유한 거대 생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병력을 유엔에 가맹한 192개국 중 130개국, 750곳에 다양한 형태로 주둔시키고 있다.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가 발표하는 자료는 군사 관련 자료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다. 그 자료에 따르면 2006년도의 세계 군사 경비 총액은 1조 158억 달러다. 1위는 물론 미국으로, 군사 경비 5,407억 달러로 전 세계 군사비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는 미국에 이어 2위인 영국보다 9배나 많은 금액이다. 3위는 프랑스이며 4위는 중국, 일본은 420억 달러로 당당히 5위에 올랐다. 러시아는 과거의 모습과 달리 342달러로 7위에 그쳤다.(중략)
미국이 국방에 사용하는 금액을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미국이 '불량국가'라고 부르는 쿠바, 이란, 리비아, 북한, 수단, 시리아의 국방비 합계보다 33배 이상 많다. 미국의 군수산업은 이 정도로 거액의 세금을 내면 들이마실 정도로 거대해진 것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진짜 '불량국가'인 것인지.....
◇ 국방예산을 다시 늘이기 위한 동시다발 테러
평화로울 때는 당연히 국방 예산을 줄이게 된다. 냉전이 종결된 결과 클린턴 시대에 국방 예산과 함께 CIA의 예산도 삭감되고 이에 따라 규모가 축소되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태에 위기감을 느낀 군산 복합체와 CIA는 마침 그 무렵 정부 안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네오콘과 협의해 국방비 증강의 필요성을 역설한 의견서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바로 2000년에 있었던 일이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 첫해에 '타이밍 좋게' 동시다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CIA의 예산은 늘어났고, 국방비는 이후 매년 크게 증가했다. 군수사업과 군은 한시라도 빨리 국방비가 증강되기를 원했다. 이는 동시다발 테러 지걱인 2001년 9월 5일에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1980년대 이후 최대인 전년 대비 11.5%가 인상된 2002년도 국방 예산을 제출하고 그것을 빨리 승인하도록 상원에 요청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때 그는 미국 본토 방위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테러의 위협(테러가 일어난 것은 엿세 후다)과 미사일 공격에 대해 경고했다고 국방성이 발표했다. 또한 럼스펠드가 기자단에게 "이번 예산 청구가 승인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때까지 매년 줄어들고 있던 국방비가 하필 그때 갑자기 대폭 증액된 것이다.
의회의 예산 의원들은 국방예산안을 정정하도록 럼스펠드에게 조언했지만, 동시다발 테러를 배경으로 국민의 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증액된 예산은 럼스펠드의 말처럼 그대로 승인되었다.
많은 독자들은 믿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지만, 동시다발 테러는 미국 정부의 극단적이기까지 한 비밀주의로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남아있다. 사건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밝혀진 여러가지 사실을 엮어나가다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게 투성이다. 너무나도 모순되는 사실이 많은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범인은 아랍인 테러리스트 19명이라고 하는데, 분명히 사망했을 터인 범인이 살아있는 경우도 있다. 9,11 동시다발 테러의 수상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책에서 철저히 분석하려 한다.
조지 부시의 당선부터 시작해 동시다발 테러의 발생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대한 군사 침공이라는 일련의 움직임은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군수 산업이 모체인 그룹이 오랜 시간에 걸쳐 면밀하게 세운 계획 속에서 유발된 것이 9.11사건이다. 물론 그 뒤에는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보스인 록펠러와 로스차일드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퍼즐이 전부 맞아들어가 커다란 그림이 완성된다.
본론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복잡다단한 계획의 제1단계로 부시를 대통령에게 당선시키기 위한 정보 공작이 어떻게 진행되었느지 소개하려 한다. 그들의 총력을 집결시킨 매우 흥미로운 작전이므로 조금 길지만 읽어보기 바란다.
◇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필승 대작전
부시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그들은 교묘하게 준비했다. 200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공을 들여 계획하고 수행한 수법을 살펴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부시를 당선시키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 단계는 민주당의 표를 줄이는 책략이다. 이에 다른 행동은 전국 규모의 선거와 최후의 격전지로 예상된 플로리다 주라는 두 가지 범위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 전국 규모의 선거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는 부시와 고어가 획득한 대의원의 수가 박빙을 이루었다. 이것이 마지막 표밭인 플로리다 주가 최후의 전장이 된 이유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표가 녹색당에서 입후보한 랠프 네이더에게 흘러들어갔다는 것은 고공연한 사실이었다. 네이더가 입후보하지 않았다면 플로리다에 가기 전에 고어의 승리가 확정되었을 공산이 컸다.
네이더는 사회 운동가로서 사익만을 앞세우는 대기업의 자세를 규탄해 정의의 편인 것처럼 생각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기업과 부자들의 편인 공화당을 도와주는 행동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나는 네이더의 대통령 출마가 부시 필승 전략의 일부라고 단언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네이더가 처음 출마한 시기는 '프로젝트 : 동시다발 테러'라고 부를 수 있는 준비 활동이 시작된 1996년이다.
이 해에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공화당의 밥 돌이 격돌했는데, 그는 출마만 표명하고 선거 운동은 전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때의 출마가 2000년을 대비한 단순한 포석이므로 필요도 없는 선거 운동을 시작할 마음이 없었고 또한 누군가에게 포섭되어 이 해 이후 매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승낙한 네이더가 반쯤은 반항적인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 선거철이 되자 그는 국비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득표율 5%를 목표로 필사적으로 선거 운동을 펼쳤다. 결국 전국에서 2.7%의 득표를 얻는데 그쳐 보조금을 받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의 표를 잡아먹어 부시의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이후 2004년에 민주당의 존 케리가 현직 대통령인 부시와 맞붙게 되자 2000년의 재판이 될 것을 우려한 민주당은 네이더가 사퇴하도록 힘을 썼다.
네이더는 완강히 거절했고, 결국 케리 본인이 직접 그를 만나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네이더는 결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대로 부시의 승리로 끝났다. 네이더는 승산이라고는 전혀 없는 선거에 매번 출마한 것인데, 그가 한 일이라고는 민주당의 표를잡아먹은 것뿐이었다. 내가 볼 때는 그가 이라크 전쟁을 계속하고 싶은 군수산업과 군의 상층부, 그리고 국제 금융자본가들을 도왔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네이더가 2008년 선거에도 나올 것이라는 보도가 2월 말에 있었는데, 만약 그가 출마하게 된다면 미국 정계의 숨은 지배자는 민주당 정권의 탄생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 플로리다 주의 선거
결국 승패를 가른 분수령은 플로리다 주였다. 이곳에서는 민주당의 표를 줄이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이 있었다. 나중에 부시의 선거 운동 부위원장이 되는 인물이 플로리다 주의 선거를 관리하는 주무 장관이었을 때 플로리다 선거인 등록 명부를 입수했다. 그들은 전에 중범죄자였던 의혹이 있는 사람 17만 명 이상을 선거인 명부에서 영국 삭제한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삭제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흑인이었다. 그중에는 단순한 경범죄로 체포된 사람이나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었던 사람도 수천 명이나 있었다. 흑인은 민주당 지지 경향이 강하므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의 득표수를 줄이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이 투표권을 박탈당했는지도 모르고 투표장에 갔다가 입구에서 제지당한 사람이 다수 생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일로 시작되는 공화당의 사기 공작을 살펴보면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 이중 삼중으로 작전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주무장관은 17만 명의 선거권을 박탈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다른 주의 중범죄자 명단을 가져와 그 주에서 플로리다 주로 이사했다는 명목으로 8,000명의 이름을 선거인 명부에서 삭제하기까지 했다. 중범죄자 명단을 넘겨준 주는 물론 부시의 본거지인 텍사스 주다.
선거인 명부를 대량으로 삭제해 승리를 확신했던 것인지, 투표 당일에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부시 진영은 이렇다할 움직임 없이 조용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고어의 우세를 방송하기 시작하자 부시 필승 대작전 팀은 황급히 활동을 개시했다. 공화당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진 부대에 해외 부재자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해외 주둔지와 군함에 메일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인 약 3,000표 가운데 80%가 부시의 것이었고, 이 덕분에 부시는 부재자 투표에서 고어를 앞설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안 고어는 선거관리위원회에 해외 부재자 투표 중 유효표만 집계해야 한다고 항의 했다. 조국을 위해 외국에서 일하는 병사들을 무시하는 행위라는 목소리가 전국의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어가 선택한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굳이 효를 다시 집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바람에 고어는 그대로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때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는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부시 옹립을 획책한 네오콘에도 유대인이 많다. 개중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도 있다. 고어는 유대인의 표를 얻기 위해 유대인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으나 그 선택이 오히려 그의 등에 비수를 꽂은 셈이다.
제2단계는 언론 공략이었다. 개표가 진행됨에 따라 4대 방송국 모두가 고어 우세를 알렸다. 미국의 모든 사람이 고어의 승리를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투표가 끝나고 아직 집계가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폭스 뉴스가 "공식 발표입니다. 부시가 승리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그때까지 고어 우세를 알리던 4대 텔레비전 방송국이 어찌된 일인지 폭스의 뒤를 잇듯이 부시의 승리를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니 흥미가 있는 사람은 꼭 한번 보기 바란다.
부시의 승리를 목청 높여 선언한 폭스 뉴스 사장은 '로저 애일리라'는 오랫동안 방송에 몸담아 온 사람이엇다. 그는 닉슨부터 시작해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줄리아니의 선거 당시 공화당의 선거 참모로 활약해 그들의 당선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이 방송국의 선거 속보 책임자인 존 엘리스는 바로 부시의 사촌 동생이다.
이 폭스 뉴스라는 회사가 설립된 때는 1996년이다. 1996년은 '동시다발 테러의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다. 기존의 4대 뉴스 방송국의 한 축을 순식간에 잠식해 5대 뉴스 방송국이 된 이 방송국은 부시의 승리를 선언하는 이 순간을 위해 설립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 이유는 폭스뉴스라는 회사의 이름에 있다. 그대로 번역하자면 '여우 뉴스'인 것이다.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은 세계 유수의 미디어 왕이다. 그가 영화사인 20세기 폭스를 소유하고 있다고는 하나, 폭스 뉴스라는 회사 이름을 정한 사람은 정말 솔직하고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블랙 유머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회사의 설립 목적, 즉 부시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민을 속인다는 목적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양에서는 사람을 속이는 요물로 알려졌으며 영어 구어로도 '사기를 치다. 속이다.'라는 뜻이 있는 단어를 보도 기관의 이름으로 쓸 리가 없다. 머독 역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다.
그런데 필승 대작전이 여기에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직도 제3단계가 남아 있다. 선거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선거관리위원호에 재검표를 지시했다. 당연히 미국 전체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방 대법원이 재검표 중지 명령을 내리고 부시의 승리를 선언했다.
연방 대법원의 판사는 현재 9명으로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으며 일단 임명되면 해임되지 않는 종신직이다. 따라서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의 편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의 구성은 공화당계가 7명에 민주당계가 2명이었다.
명백한 공화당의 사기로 투표의 공정성이 훼손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대법원이 재검표(제대로 집계했다면 고어가 승리했을 것이라고 한다)를 중지시킨 것도 모자라 공화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일련의 대통령 선거 소동은 미국의 사법부까지 부패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네오콘을 중심으로 공화당이 총력을 기울여 부시 당선을 위해 움직였다. 시종일관 부정으로 점철된 선거의 결과를 앨 고어가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수수께끼다. 이는 동시다발 테러로 시작되는 미국 개조 계획의 추진을 위해 참으라는 지시를 숨은 지배자들이 고어에게 내렸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고어는 그 일이 어지간히 분했는지 선거 뒤에 지구 온난화 현상에 관한 조사에 몰두해 그 결과를 2006년에 개봉된 다큐먼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에 담았다. 그는 환경이 주제인 이 영화에서 자신이 이때의 선거 결과를 받아들였을 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고 명확히 말했다. 공화당 전체가 동원된 이 거대한 부정 선거의 결과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분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이 사기극의 뒤에 숨은 지배자가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이를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당당히 전 세계에 공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영화 중반까지 아름다운 지구를 주제로 한 장면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미국 의회의 영상이 나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짧은 영상 속에서 고어의 안타가움이 강렬한 파동을 발산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이제 다시 본론인 금융 자본 이야기로 돌아가자. 네오콘이 오랜 기간 계획을 짜서 실행한 보람이 있어서,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국방비는 크게 늘어났다. 그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각종 법률이 제정되어 정부 비판도 불가능해졌다. 모든 것이 금융자본가들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여러분,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또 외친다. 부시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아니다.!
부시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지능에 알콜 의존증 병력이 있는 중년 사내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백악관으로 보내기 위한 일련의 계획이 입안되어 실행에 옮겨졌다. 이런 네오콘의 움직임을 다큐멘터리 방송 (프로젝트X)의 최종회에서 다루었다면 틀림없이 유정의 미를 장식했을 것이다. NHK의 선택이 아쉽다.
이러한 부정 선거를 눈치 채고 많은 훌륭한 미국인이 일어섰다. 선거 이듬해 1월 20일에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전국의 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항의 피켓을 들고 워싱턴DC로 집결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부정 선거를 비난하고 부시가 탄 방탄 차량에 토마토와 달걀을 던졌다.
◇ '국제 금융자본가'들이 실현시킨 동시다발 테러
지금부터 미국 동시다발 테러 사건의 진상을 요점만 간단히 정리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9.11 동시다발 테러 사건은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이 크게 변모한 직접적인 원인이며, 또 후세 사람들이 이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는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반영구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적을 상대로 '앞으로 50년은 종결되지 않을 전쟁'(딕 체니의 말)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테러 사건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와 관련된 아랍인 테러리스트 19명이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썻듯이 그 진상은 완전히 다르다. 설명하려면 그것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다. 간단히 말하자면 알카에다에 속하는 아랍인 테러리스트는 핵무기를 보유한 중동의 모 나라의 첩보기관에 조종당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협력함으로써 그 대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때의 미국과 모 나라의 실체는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앞잡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제 금융자본가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을 이용해 중동 모 나라의 강적인 아랍을 짓밟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냉전 종식 후의 국방비 삭감에 머리를 싸매고 타개책을 모색하던 '군산 복합체'와 '군부', 모 나라와 강한 유대관계가 있는 미국 정부 내부의 '네오콘'이 협의한 끝에 만들어낸 시나리오가 동시다발 테러였던 것이다.
아랍인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내 그들을 이용해 미국을 공격한다. 그 보복을 구실로 미국의 석유 전략상 차지하고 싶어하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국제 금융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군림하는 나라)에 당당히 군사 침공을 한다. 이렇게 해서 모나라와 미국, 양측의 야심을 만족시키는 작전이 완성된 것이다.
이 계획의 계요를 미국 정부의 숨은 지배자이자 제왕이라고도 불리는 데이비드 록펠러에게 설명하고 허가를 받은 때가 1993년 경일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을 상세히 세워 준비 행동을 시작한 때가 1996년이다. 미국을 이용해 강적 이라크를 두들긴다는 계획은 오랫동안(적어도 1980년 이전부터)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계획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활동을 중지한 알카에다를 새로이 미국의 적으로 부활시키고, 알카에다를 사칭한 가짜 테러리스트를 이용해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 빌딩에 공중 납치를 가장한 비행기를 충돌시킨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상세한 계획에는 커다란 흐름이 있었다.
제1단계로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든다.
제2단계로 동시다발 테러를 한다.
제3단계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군사 침공을 하며, 미국 애국법을 비롯한 일련의 인권 제한 법안을 입안하고 대폭적인 국방비 증강을 포함한 예산안을 작성한다는 것이다.
이 구체적인 준비 착수는 1996년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1. 세계 무역 센터 제7호동 23층에 뉴욕 시장 줄리아니의 직속 긴급대책지령본부 설치.
2. 부시의 동생 마빈이 회장으로 있는 경비 회사가 무역센터 전체에 새로운 경비 시스템 설치.
3. 폭스 뉴스 설립.
4. 랠프 네이더의 대통령 선거 출마.
면밀한 계획 속에 짜인 동시다발 테러가 성공함에 따라 모 나라의 뜻대로 미국은 아랍의 맹주 이라크를 두들겼다. 외교 전략의 최고 중요 과제인 석유 지배를 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다. 특히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무기로 강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지구상에서 모 나라를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한 독재자이며 중동의 맹주로서 모 나라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으므로 그를 제거한다면 석유 지배를 노리는 미국과 모 나라에 모두 이익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그중 하나는 탈레반 정권의 축출이다. 탈레반은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카스피해 주변의 석유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탈레반이 축출된 뒤 아프가니스탄 신정부의 대통령으로 미국이 지명한 하미드 카르자이가 취임했다. 그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실행하기로 되어 있는 유노컬사의 전 컨설턴트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은 제2장에서 소개하겠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국정을 맡은 정부는 어떤 계획을 꾸밀 때 진짜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기 마련이다. 최근의 일본을 예로 들자면 미국 정부로부터 2004년에 문서 요청이 있었던 것을 숨기고 우정 민영화를 단행했다. 정부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거짓 명분을 내세워 국론을 양분시키고 반대 세력을 힘으로 짓눌렀다. 우정민영화를 추진한 고이즈미 정권이 그 생생한 사례다.
미국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무력 침공하면서 테러리스트를 퇴치한다는 등 대량 살상무기가 위험하다는 등 좀 더 그럴듯한 핑계를 댔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돈이었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는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극적으로 변해버린 미국의 실태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 기쿠가와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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