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서/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죽음을 장려하는 의사들

생활건강 연구가 2017. 4. 28. 06:30


 


죽음을 장려하는 의사들

 

  ◆ 독후감 후기


  저자는, "의사는 환자의 죽음의 수용을 전제로 치료하고 있다" 라고 지적하면서, 결국은 환자를 치료로 죽이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자의 이런 경고를 이해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치료란 환자를 살리려 하는 것이며, 치료에 의해 병이 좋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이런 믿음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다. 환자를 의도적으로 죽이려는 그런 의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잘못된 치료의 결과가 환자를 죽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환자들은, 옳은 치료인지 잘못된 치료인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치유와 건강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의학상식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그들이 주장을 올바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안심하고 자기 생명을 그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직의사로서, 치료의 결과로 환자가 희생되고 있음을 의료현장에서 수없이 지켜보았다. 너무 충격을 받고 실망하면서, 현대의학의 왜 잘못된 의술인지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르는 병원치료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는 저자의 주장은 나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치료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건강이 파탄난 후에야 알았다. 그들은, 병을 죽이고 억제하며 병과 싸우는 치료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병을 죽이면서 몸도 죽이고 있다.

 

 "치료를 하되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의술"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소위 '죽음의 의학'의 정체다. 올바른 치유와 건강법을 배운 사람만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세상이다.


생활치유 연구가  생태농부



 죽음을 장려하는 의사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전반의 일이다. 의과 대학생이었던 나는 의학은 인명을 구하고 그것을 연장하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자주 이야기 되고 있는 '잘 죽는 방법'이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신중히 논의된 기억이 없다. 죽음은 용인되지 않았고, 희망과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암 환자는 병을 수용하기보다 그것을 부정하고 병과 맞서 싸우는 편이 생존율이 높아진다. <영국 의학 저널>은, 이 문제에 관해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생존 기간을 좌우하는 인자 중에 환자의 심리적 요인이 있다"는 것이 조사 자료에 의해 명확히 뒷받침 되었다. 최근 와이즈맨과 위덴 박사가 암환자의 생존율 통계를 근거로, 평균보다 생명이 연장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비교했다. 병이 진행 되었을 때 살고자 하는 의욕을 굳게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한 환자는 평균보다 생명이 연장되었다. 자포자기 하거나 죽음을 수용한 환자는 평균보다 빨리 사망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장병 환자로 우울한 사람, 심근 경색을 일으킨 후 우울한 상태가 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생존율이 낮은 사실이 몇 개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종합적으로 보면, 희망을 품은 사람은 수명을 연장하는 것 같으나, 죽음을 수용하면 수명을 단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출석했던 의학 회의에서, 암 환자에 대한 화학요법에 관해 어떤 의사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보고를 했다. "생명을 구하는 방법과 새로운 치료법의 발견이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가 어느 정도 죽음을 수용하고 생명을 다할 수 있도록 의사로서 배려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의료진과 함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말기 환자와 접하고 있다. 그런 시기의 상담은 가족이 없는 장소에서 하고 있다"


 의사를 포함한 죽음의 상인들은 왜 상담을 가족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다. 가족의 목적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가족의 영향으로 환자가 죽음으로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의사에게는 이러한 가족의 존재가 사악한 마귀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사가, 환자는 죽음을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 결국,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서 죽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환자를 치료해서 살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을 그들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정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불건전 한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들은 '죽음의 의학'이라고 하는 말기 환자의 정신요법을 연구하는 죽음의 의학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혹시 말기 환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깨닫지 못한 채 죽음과 직면하게 되면 생에 대해 체념한 상태에서도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병이 길어져 고통도 길어지게 된다."


 죽음을 수용하도록 환자를 설득하고 있는 의사들은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이제 희망이 없다고 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에게 당신은 앞으로 며칠밖에 살지 못합니다라는 말로 남은 생명을 고지하는 것은 환자에게 주술을 거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환자는 그말을 믿고 고지된 날짜에 죽어간다.


 마음 먹기에따라 환자의 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의사들은 그다지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원래 인간의 몸에는 신비한 자기 치유력이 갖추어져 있다.


 그 중 우선되는 것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의사는 남은 생명을 통보할 게 아니라 환자의 장래 설계를 도와주어야 한다. 환자에게 완치하기 어려운 병이기에 충분한 의료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과, 당신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전혀다르다.


 의사가 이 병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고 인정하고, 대체요법으로 자연치유력을 살린다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어떻게 될까? 환자는 더 이상 의사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대의학의 효과는 점점 의심스러운 것이 되고, 환자의 생명을 점점 위협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의사의 이러한 처사가 초래할 결과로서, 환자가 미리 죽음의 의료를 준비하는 것은 병원을 운영하는데도 이익이 된다. 죽음도 인생의 일부라는 자세로 환자가 수용하면, 병원은 죽음의 영역을 취급하는 의료를 새롭게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