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서/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집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

생활건강 연구가 2017. 4. 24. 06:30


 

집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

 

  ◆ 독후감 후기


  저자는, "임산부는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병원에서 낳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현직 의사로서 병원의 위험성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런 충고를 해주고 있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가족을 분열시키고 가정을 해체시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기의 탄생부터 환자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은 가정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는 의료현장에서 체험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주장처럼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을 어릴때부터 격리시켜 재우는 것은, 의사들이 잘못된 육아지도 때문이다"라는 저자의 주장도 귀를 귀울여야 할 대목이다. 그것은,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주려다가 가족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는, 부모로부터 충분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관심을 받고서 자라야 한다. 그래야, 성인이 되서도 인성이 올바로 잡혀지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활치유 연구가   생태농부  





 집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



  가정이란 울타리를 단단히 세우려면, 자녀를 몇명이나 낳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의 생각이나 유혹에 따라 자녀 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자녀를 낳아야겠다고 결정했을 때에는, 집에서 낳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야 한다. 집에서 아기를 낳는다면 입원으로 겪어야할 위험을 피할 수가 았다. 산후에 곧바로 아기와 지낼 수 있기에 기쁨은 증가하고 병원의 처치나 대우에 몸을 맡길 필요도 없다.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은 위험하다며 병원에서 아기를 낳기를 권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확실히 자격 미달이다. 양식 있는 산부인과 의사나 조산사라면 임산부에게 출산에 방해가 되는 병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다. 임산부는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병원에서 낳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도와줄 의사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차선책으로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곧바로 퇴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위험할 정도의 합병증이 없는 한, 임산부는 산후 20분에서 수시간이 지나면 걸을 수 있다. 그 이상은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다. 아기를 데리고 바로 퇴원하는 게 좋다.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을 완고하게 반대하는 의사를 보기 좋게 격퇴한 나의 제자의 예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출산을 앞두고 제자의 부인이 산부인과 의사에게 출산중에 남편도 입회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담당 의사는 "출산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으로, 아무리 남편이라 해도 입회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반박했다. "출산이 그렇게 개인적인 것이라면 의사 선생님도 입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부인은 남편이 입회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아이를 낳았다. 산후 20분 정도 후에 아기를 안고 곧바로 병원을 나왔다. 그 후 두명의 자녀를 더 낳았는데, 모두 집에서 낳았다. 내 제자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되었다.


 현대의학의 공격은, 출산 중에 남편을 부인에게서 떼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여성은 남편이 출산에 입회할 수 있도록 의사에게 요구해야만 한다. 물론, 남편은 단지 그 장소에 입회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남편이 부인의 출산에 임하는 이유는, 부인과 아기에게 힘을 주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기 위해서다. 종국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병원은, 아기를 가족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무수한 규칙들의 시험장이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면, 이런 규칙에 늘 의문을 품는 자세를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아기를 낳으면 아버지인 내가 먼저 안을 것이다'라는 의지를 아기를 낳기 전에 병원측에 먼저 알려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호사가 아기를 엄마로부터 떼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기는 엄마의 것이지 병원의 것이 아니다. 탄생 직후 귀중한 수분간을 엄마 품에 있다는 것이 아기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엄마와 아기를 같은 방에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예고도 없이 그 권리를 빼앗는 일도 있다. 소아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원들이 휴가를 가버리면 모자 별실이 약속이나 된듯이 시행하는 병원조차 있다.


 엄마는 모유 육아의 편견으로부터 자기 몸과 아기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필요하다면 의사에게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루 분유는 모유와 거의 영양이 같다"라고 말하는 의사와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 없다. 이런 의사에게는 적당히 끄덕이며 무시해버릴 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떤 엄마는, 의사로부터 "아기의 체중이 순조롭게 늘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녀는, 모유의 보조 식품인 가루 분유 샘플을 여섯 봉지나 받았다. 그 엄마는 한마디 대답도 못하고 샘플을 받았다. 집에 돌아오는 도중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1950년대의 일이다. 시카고에 사는 마리안 톰슨이라는 여성이 첫 출산을 했을 때, 모유에 관해 충고해 줄 사람을 한사람도 찾지 못했다. 소아과 의사도 이것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6명의 여성과 '라 레체 리그'를 결성했다. 라 레체란, 스페인어로 '모유'라는 뜻이다.


 그 모임은 그 후 '국제 모유 연맹'이라고 하는 국제 조직으로까지 확대 되었다. 그들은, 세계의 엄마들에게 모유 육아를 가르쳐오고 있다. 현제 회원 수는 수십만 명에 달하며, 딸들 세대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모유 유아를 지원하고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국제 모유 연맹에 가입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의사가 육아에 대해 엄마에게 하는 사소한 한마디가 문제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모유 육아를 하는 것은 좋지만, 생후 6주 안에 고형식을 먹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런 충고는 전혀 의미가 없다. 고형식은 생후 6주가 아니라 6개월이 지나서 먹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6주 안에'라는 규칙을 정하는 바람에, 엄마는 생후 6주 사이에 아기에게 고형식을 강제로 먹이려는 실수를 부르고 있다. 모유야말로 아기에게는 최고의 완전 영양식이다.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 식품'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아기에게 고형식을 먹이기 시작할 때는, 이유식 제조업체들의 거짓 선전을 무시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조한 가공 식품이 가정에서 만든 음식보다 우수하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정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 아기들은 모두가 병에 걸려야만 할 것이다.


 엄마가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기 좋게 만들어, 조금씩 아기에게 먹이는 것이 좋다. 잘게 썰어 부드럽게 익혀서 고운 채에 걸러 섞는다. 단 1회에 먹이는 것은 한 종류로 한다. 혹시 아기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때는, 무슨 음식이 원인인지 기록해두는 것이 좋다.


 아기가 울고 있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안아주어라. 아기는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다. 엄마와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를 돌봐달라고 울음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를 울지 않도록 길들인다는 생각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생물로서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는 처사다. 아기가 밤에 우는 것은 엄마 아빠와 같은 방에서, 가능하다면 같은 침대에서 안심하고 잠들고 싶기 때문이다.


 아기를 부모와 다른 방에서 재우도록 하는 의사의 육아지도는, 가족간의 유대를 끊으려는 현대의학의 그릇된 가르침 중에 하나다. 어른이라도 방에서 혼자 자는 것은 내키는 일이 아니다. 그런 경우 안정감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다.


 하물며, 갓 태어난 아기가 피부로 기억하는 엄마의 체온과 친숙한 품으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어두운 방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혼자 쓸쓸히 자야 한다는 것이 견뎌낼 수 있겠는가!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