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서/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가정을 붕괴시키는 현대의학

생활건강 연구가 2017. 4. 23. 06:30

 


가정을 붕괴시키는 현대의학


    ◆ 독후감 후기


  저자는, "현대의학은, 사람의 생사에 개입하여 공허한 의료 행위로 가족의 연대와 가정을 붕괴시키고 있다"라고 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삶을 마치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


 이렇게 병원 의존적인 현대인들의 생활이, 필연적으로 가족의 연대와 가정을 무너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의 주장처럼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상업적 치료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건강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액의 의료비는, 가정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가게 된다.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치료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 가족 구성원 전체가 불행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건강교육은 본래 병원이 아니라 가정에서 해왔던 것이다.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 오던 민간요법에 의해, 사람들은 스스로가 건강을 지킬줄 알았다. 이것을 현대의학은 완전히 파탄시키고 사람들을 병원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문제는, 현대의학의 화학치료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가 아니라는데 있다.


 그때문에 사람들은, 치료 후유증으로 건강과 생명을 잃고 있다. 현대의학은, 돈과 건강만 뺏어가는 게 아니라 가정까지 붕과시키고 있다. 의료현실에 눈을 뜨고 '올바른 치유와 건강의 길'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활치유 연구가  생태농부


 


가정을 붕괴시키는 현대의학


 

  이제까지 보아온 것과 같은 불행이 일어나는 것은, 현대의학이 인가하고 있는 의료처치에 그 원인이 있다. 현대의학은, 사람의 생사에 개입하여 공허한 의료 행위로 가족의 연대와 가정의 전통을 붕괴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생명 그 자체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생리적 변화도 마치 병인 듯이 취급하고 있다. 그것을 고친다는 미명하에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치료를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인체의 기능에 장애를 가져오게 되고 생명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일찍이 가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부여받으며 자라야 한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정 밖에서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운명은, 노인들에게서도 기다리고 있다. 노인들은 괄시 대상이 되어 가정으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있다. 왜견상으로는 호텔처럼 보이는 요양원에 수용된다. 그곳에서는 노인들이 재능이나 기술 등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현대의학은 노인들을 가정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그들의 재능과 인격을 무시하는 풍조를 확산시켜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래의 고객이 될 예비 환자를 양산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병에 걸리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누구나 몸은 쇠약해지기 마련이며 서서히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이런 습관적인 말은 현대의학교의 주술에 다름 아니다. 노인들은 이런 주술에 걸려 병을 쉽게 얻게 된다. 그리하여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집중치료실에 의료기기에 묶여 몸도 가누지 못한 채 혼자서 쓸쓸하게 인생의 최후를 맞는다.  


 원래 미국 사회 그 자체가 가정을 붕괴시키는 원인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대량의 이민을 받아들여 그들을 도시로 흡수하여 성립된 나라인 것이다. 수백만의 이민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수 많큼의 가정이 세계 각지에서 분리되어 흩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민자 대부분은 도착 직후 수개월 간의 고달픈 기간을 넘기기 위해, 먼저 이 나라에 와 있던 친척이나 개척민들과 일치단결하여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출생한 세대가 독립하여 황야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가족들은 또 다시 흩어졌다. 구세대의 전통을 이어오던 세대가 사라지자, 뒤를 잇는 세대는 전통과 인연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흔히 '인종의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미국은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로 융합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실지로는 무엇하나 융합된 것이 없다. 차라리 가족의 연대와 전통이 증발될 때까지 바짝 졸인 '빈 냄비'라고 해야할 지경이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이민 정책은 중단 되었다. 가정을 붕괴시키는 현대의학의 성전의 무대는 이때 생겨났다. 이민이 중단되고 가정의 전통을 유지할 가족 간의 연대가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전통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전통이 일찍이 존재하고 있었는지조차 잊게 되었다.


 현대의학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소아과를 발전시켰다. 소아과는 나의 전문 분야다. 20세기 초 미국의 소아과 의사는 수천 명밖에 없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장 노동을 담당하던 남자들이 소집되었다. 여성들이 남성의 일을 대신 해야 했다. 여성이 밖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자 평상기와 같이 육아나 가사일 등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보육원을 공장 부근에 설치하여, 엄마들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면서 육아까지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과연 타당한 생각이다. 그러나 실지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의사가 "생물학적인 육아의 필요성은 무시해도 좋다"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베이비 시터' '유모' '핵가족'이라는 단어가 보급된 것은 전쟁 중의 일이다. 의사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라고 말하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는 엄마 또는 유모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수백만 명의 엄마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아이들을 타인에 맡기고, 전쟁 수행이라는 국가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건강 관리에 관해서는 의사나 전문가보다도 일반 사람들 쪽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로부터 가정을 지키려면,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의사가 과거에 어떤 것을 '절대의 진리'라고 설명했었나를 알면, 그 의미가 확실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1920년대의 소아과 표준 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충고가 실려 있다.


 "젖먹이 아기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장난감을 보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거나 흔들어주는 습관은 아기에게 해로운 경우가 많기에 금해야 한다. 안거나 입맞추거나 무릅에 올려 놓는 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밤에 잠들기 전에 뺨에 한 번 정도 입맞춤을 해주어라. 생후 6개월이 되지 않은 아기와 놀아서는 안 된다. 입맞추는 횟수도 될 수 있는 한 줄여라. 요람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아기에게 빨리는 장난감도 금지해라. 아기가 손가락을 빨려고 하면, 팔 꿈치를 막대로 고정하고 팔이 굽어지지 않도록 해둔 다음, 밤에는 아기의 양손을 고정시켜 재우도록 하라."


 오늘날에는 이러한 조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엄마들은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라 믿고 소아과의 '표준적'인 충고에 따랐다. 아기를 달래는 모성 본능을 억압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세대가 우리를 보면, 위의 예처럼 말도 안 되는 행위들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