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강요받는 아이들
◆ 독후감 후기
저자는, 어릴 때부터 독립심을 강요하는 소아과 의사들이 잘못된 육아지도를 비난하고 있다. 아이들은, 단란한 가족관의 관계를 지켜보고 자라면서 인격이 형성된다. 이렇게 인격형성에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을 남의 손에 길러지고 있음을 저자는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모르고, 정말로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성장하고 있다"는 저자의 경고를 우리는 무섭게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저자의 말처럼 엄마와 아이 사이의 의존이 건전한 가족 관계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를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면, 부모와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모나 어른의 말보다 학교나 텔레비젼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된다. 왜냐하면, 진실을 받아들이려 하기보다는 사무적인 경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계산적인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성장해 가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된 것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의학이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생활치유 연구가 생태농부
독립을 강요받는 아이들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한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일이 대부분은 기대하는 만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져 있는 지루한 노동을 단지 기계적으로 소화할 뿐이다. 그래도 계속일을 하는 것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르는 데 힘을 다하는 것보다, 여성에게 만족감을 안겨주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여성도, 자아 실현을 위해 가정에만 안주할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활동의 장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도움을 얻으면서 자아 실현을 이룰만한 일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는 남성의 경우도 만찬가지다. 가령 발견했다 하더라도 매일 매일 바쁘게 일을 해야 한다. 마침내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일이 좋아서만이 아니다. 여성도, 출세 경쟁에서 승부하기 위해 일에 매달리게 된다.
이러한 생존 경쟁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를 주는 불건강한 것이다. 가정 밖에서 얻어진 만족감은 대부분의 경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환상이 가정에 미치게 되면 현실에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옛날의 아이들은 여섯살이 되면서부터 집단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보육원이 각지에 생겨서, 입원이 허락되기만 하면 엄마는 곧 아이를 그곳에 보낸다. 최근에는 0세 아기들의 교육이라는 것도 있을 정도다.
옛날 보육원에서는 식사가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아이가 보육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겨우 몇 시간이었다. 나머지는 집에서 지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유럽의 보육원은 엄마가 일하는 공장이나 가게, 사무실과 같은 장소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직장에서 가능한 가까운 곳에 마련되어 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면 정신적 쇼크를 받는다. 그 배려로, 엄마는 점심 시간에 아이를 만나러 가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미국의 보육원은 엄마의 직장에서 먼 곳에 있다. 때문에, 엄마는 아침 일찍 아이와 헤어져야 한다. 곧 멀리 떨어진 직장을 향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직장에서 8시간 9시간, 혹은 10시간 동안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완전히 지쳐서 집에 돌아온다.
보육원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생판 모르는 타인이다. 본래 아이는, 가정에서 길러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기에서 가족 간의 미묘하고 섬세한 역학이 아이의 성장에 일정한 작용을 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인격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아기를 타인의 손에서 보내고 있다. 따라서 친자 간의 골을 메우는 교육을 보육원이 담당하게 된다. 그 때문에 대학이나 단기 대학에는 수료시 육아 전문가 자격을 인정하는 '유아교육과'가 설치되어 있다. 육아 경험이 없는 육아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보육원 중에는 저녁을 주는 곳도 있다. 1960년 경까지만 해도,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시행하는 곳은 드물었다. 지금은 어느 초등하교나 당연한 듯이 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급식 때문에 아이는 집에서 식사를 할 기회를 잃게 되었으며, 급식 시간은 짧게 배정되어 있다.
이렇게 아이의 성장기에 부족해서는 안 될 가족 간의 단란한 시간이 줄어든다. 드디어 아이는 가정의 중요함을 잃어버리고, 가족으로부터 정말로 독립하여 성장해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것은 의사가 '독립'이라고 하는 언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음에도, 그 잘못된 가치를 인정하고 장려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뉴욕에 살고 있는 어떤 가족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가족은 젊은 부부에 자녀가 셋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잃어서 부인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남편도 다시 일을 찾았으나, 부인은 그 후에도 계속 일을 했다. 드디어 커다란 보육원의 소장이라는 지위까지 오르게 되었다. 세 살이 된 아들도 그 보육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그 남편에게 "그것 참 잘 되었네요. 아이가 엄마 옆에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안심이네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놀라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당치도 않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빨리 독립심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설명에 의하면, 이 부부는 독립심을 확실하게 길러주기 위해 아들을 엄마와 다른 버스로 통학시키고 있었다. 이 아빠는 나중에 그런 식으로 아들에게 독립심을 길러주려고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세살 된 아이에게 있어서는, 독리심을 강요받는 것보다는 건전한 의미에서의 의존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젊은 아빠에게 그러한 교육관을 심어준 건 과연 누구일까? 다름아닌 소아과 의사다. "아이들이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서는 가능한 빨리 부모와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소아과 의사의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소아과 의사에게는 묘한 습성이 있다. 아이가 울어도 그대로 울게 내버려두라고 한다. 육아 문제를 의사에게 의존하도록 하여, 가정 문제 참견자로서 인정을 받으려는 습성이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의존이야말로, 건전한 가족 관계를 만드는 원천이다. 가족이라는 것은, 구성원 사이의 의존에 힘입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그날 그날을 모두 '가족 의존 기념일'로 정하여, 가족 전원이 이 기념일을 축복하면서 살자고 말이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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