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있으면 병이 생긴다
◆ 독후감 후기
저자는 "병원에 있으면 병이 생긴다"고 경고하며, 입원은 불필요한 것이리고 하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정 반대로 "병원에 가야만 병이 해결 될 것"처럼 믿고 있다. 이는, 병원 환경이 주는 위험과 잘못된 치료를 하고 있음을 환자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병원에 입원하면 밀폐된 건물 안에서 병자들과 생활하고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한다. 병원은, 치유를 원하는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공간이다. 환자가 몸이 건강해지려면, 기본적으로 신선한 공기와 물이 있는 자연환경이 중요하다. 여기에 자연이 살아있는 음식이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세균 먼지가 가득한 밀폐된 병실에서 병자들과 함께 생활하면, 건강한 사람도 병을 얻기 쉽다. 더구나, 치료 자체가 치유를 돕는 치료가 아니라 병과 싸우는 치료다. 병을 죽이며 몸도 죽이는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치유가 되는 게 아니라 병이 점점 깊어지고 건강이 무너져간다.
대부분 환자들은, 입원을 하여 이런 현실을 눈으로 목격하고 체험하면서도 위험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언론 방송을 통해 철저히 세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론 방송이 자신을 세뇌시키는 줄 조차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돈 주면서 건강을 잃는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활치유 연구가 생태농부
병원에 있으면 병이 생긴다
환자는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살아있는 시체가 된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본인이 의식하지 않아도, 병원의 환경과 그 대우에 의해 자연스럽게 재생의 의지가 꺾인다. 희망을 잃고 어두운 나날을 보내는 동안, 심신이 모두 쇠약해져 간다. 이런 상황에서 즐거운 기분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자는 그야말로 낙천적인 사람일 것이다.
게다가, 고통에 신음하며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비참한 얼굴과, 그것을 보고 있는 환자들의 음울한 얼굴을 눈앞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직원들이 비 인간적인 대우와 사무적인 말과 행동에 직면하게 된다.
접수 창구에서 수속을 마치면, 환자는 인격을 가지 인간이 아니라 검사와 증상의 집합체로 취급된다. 정체성을 박탈당한 채, 치료의 대상인 '증상의 예'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속해 있던 일상을 뒤로하고 평상복을 벗어 병원 선반에 정리하여 넣을 때, 이제까지 추억도 어딘가에 정리하여 넣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이나 친척들의 면회 시간은 제한되고, 허가되는 것은 형식적인 면회뿐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중압을 받으면, 환자는 자신의 건강 관리를 자신이 행하겠다는 용기를 잃어버리고 만다. 병원은 환자에게 고립감, 소외감, 상실감, 우울감을 맛보게하여 결국엔 자신들의 온갖 요구에 따르게 한다. 환자는 정신적으로 비참해져 가고 드디어 '모범적인 환자'가 될 준지를 마치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과 노인에게는 이 주술을 걸기가 쉽다. 아이들의 경우, 강한 불만이나 실망, 부모의 이별에 따른 불안으로 격심한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된다. 여기에 수술이나 뭔가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심이 더해진다.
입원하여 하룻밤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퇴행 현상을 일으키고 오줌을 싸거나 말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결코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3~6세 까지의 아이들의 정신이 대 혼란기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거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아이를 병원에 맡겨두고 혼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너무 잔혹한 일이다. 병원 환경은 아이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하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나는 아이들이 탈장 수술을 받을 때 어떤 현상을 보이는가에 관해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를 그들에게 직접 물어 조사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성기가 어떻게 될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자신의 몸에 어느 부분을 수술받는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논문의 결론은 이렇게 끝맺었다. "의사는 사전에 아이들에게 충분한 상담을 행하여, 수술에 관해 잘 설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의 야간 회진은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울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야간 회진 중에 울고 있는 갓난아기나 아이들을 발견하면, 안아 올려 울음을 멈출 때까지 안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또 간호사의 무릅위에 올려 놓으면, 드디어 울음을 멈추는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다.
입원의 괴로움은 아이들만 겪는 게 아니다. 어른 특히 노인들 또한 입원에 의한 괴로움을 겪고 있다. 데이빗 그린 박사는 "병원은 노인들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장소다"라고 말했는데,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한다. 아니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하는 편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병원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최악의 장소다."
입원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른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그런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는가? 자신도 입원하면 다루기 어려운 아이가 된다. 왜 아이들에게 매우 침착한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가. 그들에게 가해진 너무도 두려운 이별과 공포를 간단히 극복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입원해서 받는 대우는 인간의 존엄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들이다. 환자는 우선 옷을 벗고 병원의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의사, 간호사, 기사 등이 행하는 각종 검사에 노출된다. 어찌 해볼 방도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해야하는 처지가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당되는 식사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것도 식사할 시간이 있을 때 이야기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한 방에서 머무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 병자들이다. 25년 동안 의료 현장에서 일해왔으나, 환자가 치욕을 감수하고 인격을 무시당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했다는 사례는 이제까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전염병이 병원 내에 퍼지면, 입원 환자 전원을 집으로 보내든가 병원을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나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병원을 옮겨야 할 필요성이 있을 정도의 중증의 환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10명 중 9명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그들 환자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가 되었을 당시, 나는 입원이 어느 정도의 환자에게 필요한 것인가 소규모의 실험을 해보았다. 담당하고 있던 병동의 침대는 28개였고, 24명의 환자가 입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환자에게도 반드시 입원해야 하는 필요성을 찾지 못했다.
입원 허가 담당 의사로 일할 때에는 환자가 집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환자가 병원까지 오는데 드는 택시 비용을 병원 측에서 지불한다든지, 환자가 집에서 사용할 의료기구를 차량을 이용해 운반해준다든지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입원 환자는 서너 명까지 감소했다.
나는 입원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가를 훌륭히 증명해 보인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간호사들로부터는 "환자가 없으니 다른 병동으로 옮겨주십시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연수의와 전문 의학 실습의로부터는 "연구 대상이 부족해서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라는 불평을 들었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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