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서/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의사가 약에 연연하는 이유

생활건강 연구가 2017. 2. 24. 06:17


 

 


 

 의사가 약에 연연하는 이유



   독후감 후기


  아래 내용을 읽어보면, 작가는 "의사가 약에 연연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을 고려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글에는 내용이 없지만, 의사들이 이익 우선의 치료를 하는 것은 성과급제로 받는 보수 체계도 한몫을 하고 있다. 환자야 어떻게 되건, 약을 많이 처방하거나 수술을 많이 할수록 봉급을 더 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을 생각하며 치료하고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환자의 이러한 순진한 믿음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작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복용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타이르는 게 아니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복용하는 게 대단히 위험하다"고 한다면 이게 도데체 무슨 말일까? 임상 실험의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작가는, 음식을 부정하고 화학물질을 약으로 사용하는 현대의학을 고발하고 있다. 약은, 사실 영양이고 음식이다.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의학이다. 왜냐하면, 약이 아니라 독약으로 병을 고쳐준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약으로 병을 죽이며 몸을 공격하고 있으니, 치료를 받을수록 건강은 점점 멀어져 간다. 병은, 몸을 좋게 하고 건강하게 해야 낫는 법이다. 사람들을, 이러한 건강의 진리를 모르고 있으니, 오늘날 의료 피해로 건강과 생명을 잃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활치유연구가  생태농부




 의사가 약에 연연하는 이유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따르려면, 환자의 맹신에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약의 부작용과 효능을 저울질 할 때, 의사가 우선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환자의 건강이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현대의학의 부패한 윤리규범에 의해 일그러지고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다음과 같은 철칙으로 바뀌었다. "나는 환자가 아니라 '치료'를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이 새로운 철칙에는 약물요법이든 뭐든 간에 의사가 '치료'를 행하지 않으면, 환자가 해를 입는다는 기묘한 논리가 숨어 있다. 그 사이에 행했던 의료 행위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치료의 의의를 의문시하는 것 자체가 성역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해를 끼칠지 어떨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치료를 받은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의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병과 잘 싸우세요."


 의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환자에게 어떤 약품을 투여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화학 덕분에 한층 좋아진 생활'이라는 슬로건을 '화학물질 덕분에 한층 좋아진 생활'이라고 편리한 대로 바꾸어서 약물요법의 보급에 악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사가 약물요법에 의지하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진찰 도중에 영양 상태, 근래의 운동 상황, 직업, 정신 상태까지 일일이 질문하고 있으면 받을 수 있는 환자의 수가 확실하게 한정되어진다. 그에 비해 약물요법은 어떠한가? 처방하나로 손쉽게 진찰을 소화해 낼 수가 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고가의 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투약에 의한 '즉석요법'이 의사 자신에게도 돈을 벌게 하고 약제사의 주머니도 두둑하게 만들어주며, 제약회사의 이윤도 높여준다는 사실이다. 즉, 의료 관계자들에게 '즉효성'이 높다는데에 있다.


 그러나 의사가 약에 의존하는데는 이런 영리주의뿐만 아닌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의사들은 병의 치료에 관해서 늘상 완고했다. 사리를 분간 못할 정도로 잘못된 생각을 품어온 것도 사실이다.


 20세기의 의사가 약 남용의 의료에 전념하고 있는 것처럼, 19세기의 의사에게는 위생 관념이 없었다. 거머리를 사용한 수질요법, 일정량의 혈액을 뽑아내는 사혈요법, 다량의 설사약을 사용하는 요법 등 소름끼치는 처치를 당시 의사들은 효과가 있는 치료라고 굳게 믿고 행했던 것이다. 이렇듯 의료라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환자에게 위협을 주는 위험한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복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약에 대한 의사의 신앙을 더욱 파고들어가면, 현대의학이라는 게 마치 종교의 신학과 같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문제에 다다른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의 부패한 일면이기도 하다.


 서양 의학은 물론, 세계의 모든 의학 체계의 대부분은 음식을 중시하고 있다. 서양 의학의 경우, 음식은 약물과도 같다. 그러나 통풍이나 당뇨병, 고혈압 등의 치료에 사용되는, 임상영양학에 기초한 저염분, 저콜레스테롤 '식사요법'은 아직 확실하게 체계화되어 있지 않으며 불완전한 상태다.


 미국의 의사는, 식생활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무시한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사는 돌팔이 의사로 매도당하고 만다. 한편 동양의학에서는 음식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일찍부터 그 지혜를 건강을 위해 활용해왔다. 또한 종교에서도 인간의 정신 상태에 음식이 깊게 관계하고 있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서양의 종교, 특히 기독교는 음식에 관하여 현대의학과 전적으로 같은 생각을 한다. 현대의학과 기독교는 실지로 먹는 음식 대신에 의식적, 혹은 상징적인 음식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전 <신약성서>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다.(마태복음 15장 11절)


 유대교의 성전 <구약성서>에는 음식이 적합 부적합이 정해져 있다. 유태교 뒤에 성립된 기독교는 자신의 성전인 <신약성서>에 <구약성서>를 덧붙여 이룬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기독교의 지도자들 중에는 유태의 음식 규정을 거부한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역으로, 음식의 중요성을 아예 부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현대의학은 그것에 촛점을 맞춰 더욱 극단으로 내달았다고 하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신체의 대사를 생각하면, 먹는 음식은 입으로부터 나오는 언어와 같은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사실, 음식이 그사람의 성격을 좌우하는 일조차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의사는 의학계에서 이단자라든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눈총을 받게 된다. 현대의학에서, 성스러운 힘을 가진 '음식'은 혈액에 실려 전신으로 순환하는 화학물질밖에는 없는 것이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