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선생 초당에 다녀오다.
장마기의 후덥지근한 기온이 계속되고 있는 날씨입니다.
오늘은 머리도 식힐겸 해서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에 다녀왔습니다.
다산선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선비로서 목민심서를 지으셨으며,
강진에서 19년동안 유배기간에 무려 500여권의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다산 초당으로 가는 이정표
그 많은 저서를 남기신 정약용 선생은 어떤 분이실까 생각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한가로운 오솔길이 사색을 깊게 해주고...
무더위에 걷고 걸어 산중턱으로 오르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니 바닷물이 들어오는 강진 전경이 보이고...
정약용선생께서 손수 새겼다는 글...
다산선생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보여준다는 안내글...
다산초당의 뜰~
선생은 이곳에서 세상과 아픔을 함께 하며, 고단한 마음을 한잔의 차로 달래신듯 합니다.
조선 후기, 세상이 어지러우니 지방수령들이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여 목민심서를 쓰셨다고 하는 군요.
박물관에서 영정사진을 정중히 카메라에 담으며
선생께서 세상을 걱정했던 마음이 어떠 하셨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조선 후기의 수많은 민란, 나라가 일본에 망하자 민중은 노예가 되어 성과 이름까지 갈게 되고...
해방이 됐다지만 또 다른 점령국이 들어와 민족이 비극은 다시 시작...
분단, 제주4.3, 순천 여수사건, 육이오, 유신, 광주, 천안함, 신유신, 세월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땅에 비극...
그리고 병든 음식, 병든 의료에 의해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대 환란...
다산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우리의 민족적 비극과,
오늘날 사회 전체가 깊게 병들어 가는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가셨을까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自然치유가 생태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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