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서/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생활건강 연구가 2017. 5. 3. 06:30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독후감 후기


  저자는, "의사들의 의료 행위가 치료라는 이름을 가장하여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의사는 환자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학의 의념이 무색할 정도인 현대의학을 개탄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위험한 의료 행위가 일반인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런 이유가 "현대의학이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종교화 될 수 있는 것은,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의학지식"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병의 예방과 치유 그리고 건강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을, 병원과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의학을 종교처럼 따르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현대의학이 치유와 건강을 목적으로 한 의술이 아니라는데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다국적제약회사가 현대의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나 의약품의 개발이, 환자의 건강이 아니라  수익을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생활치유 연구가  생태농부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의학의 이념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라면, 의사들은 이 이념이 거추장스러운 족쇄쯤으로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에선 이 이념이 의사들에게는 매우 쓸모가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표어를 가장하여 엄청난 실수들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력이 구세력을 대신하여 사회를 지배할 때, 최초로 필히 행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언어 개혁이다. 언어를 조작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생각이나 행동은 쉽게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폭발'이라고 표현하면, 생명의 탄생이 불길한 것으로 인식된다. 중절도 '가족 계획'이라고 바꾸어 말하면 생사에 관계없는 단순한 의료 행위로 여겨진다. 처음엔 '자비로운 살인'이라고 불렀다가 '자비로운'은 듣기에 좋으나 '살인'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안락사'라고 바꿔 부르게 된 것도 한 예이다.


 그러나 말을 바꿈으로써 그 본질을 감추는 최악의 예는 무엇보다도 '존엄사'다. 이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존엄성'을 지닌다면, 어떠한 상황에 놓여진 죽음이라 할지라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들 의료 행위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나치를 연상케 해 두렵기만 할 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전의 나치 정권하의 독일 의학계에서도,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는 이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당시의 독일 의사들은 중증의 정신박약이나 신체장애자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하여 대량으로 '처분'하고 있었다.


 중절이나 안락사가 어느 곳에서나 행해졌고 노인들의 '존엄사'도 끊임없이 자행 되었다. 후에 그것은 집시의 학살, 반 나치 분자의 처형, 그리고 유태인의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나치는 이런 흉악한 행위를 성스러운 싸움이라는 언어로 표현했다.


 현대의학은 싸움이 격화됨에 따라, 전쟁 부상자들을 다루기 위해 '죽음의 수용소'를 건설할 필요를 느꼈다. 여기에서도 그럴듯한 표현이 본질을 속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호스피스'라는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호스피스란 즐겁게 받아들이는 장소라는 의미다.


 죽음의 카운슬러들이, 호스피스라는 이름의 수용소에 배치되어 환자들에게 의료 상품을 받아드리도록 독려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교묘한 시장 전략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욕망을 부추켜야 한다.


 현대의학의 상품은 죽음 그 자체이다. 따라서 환자에게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삶의 본능을 약화시키면 비인간적인 처치라도 달게 받아들이게 된다. 말기 환자는, 약물 남용에 의해 반 죽음 상태에 놓여 있도록 만들어 죽음의 상인에 의한 상담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진다.


 드디어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면, 현대의학은 환자에게 죽음의 의식으로 유혹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에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미사가 기독교의 최고 의식인것처럼, 집중치료실에서의 죽음은 현대의학에 있어서 최고 단계에 이르는 의식이다. 그 순간에 놓이기까지 가족은 면회사절이 되어 이미 격리되고 환자 홀로 남게 된다.


 환자는 가족의 손 대신, 최신형의 하이테크 의료 기기에 연결된다. 드디어 환자는 , 죽음의 신 앞에 초대되는 것이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