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에 개입한 산부인과 의사
출산에 개입한 산부인과 의사
◆ 독후감 후기
저자는,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보다 병원에서 낳는 것이 위험한 요소가 훨씬 많다"며 구체적인 피해 사실까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출산의 95% 이상은 합병증이 없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제왕절개를 하면서, 모자 건강과 가족간의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저자가 "가정을 공격하는 가정의학"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가정에서 아기의 탄생은 신의 축복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식구가 하나 늘어나는 것은 가족들의 기쁨이 그만큼 깊어진다.
현대의학은 이러한 생명존중 사상에 기반을 둔 의료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다보니, 저자의 주장처럼 결국 가정을 공격하고, 가정을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주변 환경은, 아기의 성품과 미래를 크게 좌우한다. 출산이 남성의사가 하는 것도 이상스럽지만, 제왕절개의 남발로 인한 생명탄생의 축복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생활치유 연구가 생태농부
출산에 개입한 산부인과 의사
핵가족의 세 번째 구성원, 즉 자녀의 출산을 예측하면서부터 현대의학의 개입은 갑자기 격렬해졌다. 일반의 종교라면, 합리적이고 신중한 의식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의사는 문제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위기를 부추키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개시한다.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다. 출산이 병인것처럼 보이게 하여 수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출산의 95% 이상은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가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 자신들 일이 95%는 불필요한 것임을 세간에 알려지고 만다. 이렇게 되어야 산부인과 의사가 격감하고, 건전한 가정이 증가될 텐데….
병원에서 출산은 분만실이 아닌 수술실에서 모든 것이 행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보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위험한 요소가 훨씬 많다.
태아에게 진통과 고통을 줄 확률이 6배, 난산이 될 확률이 8배, 소생술을 필요할 확률이 4배, 일생동안 장애를 지니게 될 확률이 30배나 된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경우, 이런 위험이 신생아에게 닥칠 수 있다. 한편, 산모도 다량의 출혈로 위험에 빠질 확률이 3배나 높다.
일단 임산부를 밀실로 데리고 가면, 그곳은 산부인과 의사가 맘대로 할 수 있다. 여기서 임산부의 존엄성을 무시한 파렴치한 처사가 차례로 행해진다. 임산부는 우선 질 주위의 음모를 제거당한다. 1930년대 이후 출산에 앞서 행해지는 이런 행위가 박테리아균을 오히려 증가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나서, 분만실의 침대에 누워 좌우의 발걸이에 다리를 올려놓고 다리를 크게 벌린다. 이러한 체위는 산부인과 의사의 욕구를 체우기 위한 의미밖에 없어 보인다.
임산부의 몸에는 정맥주사가 연결되어 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통해 언제든지 마취약을 주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임산부는 가족으로부터 격리되고 신체의 자유마저 빼앗긴 채 누워 있다. 이미,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임산부는 마취로 감각과 기억을 잃어버린다. 아기를 낳는다는 실감마저 잃는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산부에게 마취를 시키는 것은 도마 위에 잉어에게 칼을 대기 위한 것이다. 그때, 매스로 자르는 의례가 바로 제왕절개인 것이다. 제왕절개는 후유증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 중 어떤 것은 증상이 산 후 수주 간에서 몇 달에 걸쳐 나타나기도 한다. 자연 분만이 아닌 방법으로 태어난 아기와 엄마 사이에는 애정이 싹트기 어렵다. 그때문에 엄마에 의한 학대가 나타나기 쉽다.
산욕기는 산후에 모체가 회복되는 6~8주의 기간이다. 이때는 산모와 아기가 모자의 정을 깊게 하는 중요한 시기다. 제왕절개는 그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산욕기 초기에는 마취가 가시지 않는 엄마와 갓난아기는 함께 지낼 수 없다. 또한 수술 탓으로 산후의 분비가 원활하지 못하여 기분도 우울해지기 쉽다. 그뿐인가. 출산에서 맛본 실망과 고통 때문에, 출산 그 자체가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버린다.
산모에게는, 산후의 귀중한 시간을 아기와 상쾌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다. 하지만, 진통과 출산 회음절개나 마취에 의해 산모는 지치게 된다. 또한 산모가 거부하지 않는 한 '모자 별실'의 원칙에 따라 아기는 신생아실이라고 하는 강제 수용소로 옮겨지게 된다.
병원의 규칙이라는 것은, 출산이라는 귀중한 경험으로부터 가족을 때어놓는 수단일 뿐이다. 면회 제한으로 한 번에 한 사람이나 두 사람만 아기를 만날 수 있다. 이는 가족간에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편, 아버지, 어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숙부, 숙모, 종형제 중에 누구를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아기의 형이나 누나는 대게 면회가 거절된다. 설령 허락이 되었다해도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가족의 일체감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