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연구가 2017. 2. 23. 06:30

 

 

 


약에 찌드는 아이들


 

  독후감 후기


 아래 글을 읽어보면, 작가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진단에 근거하여 아이들을 약물 중독자로 만드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치료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미래와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약들이 왜 의료현장에 유통되고 있으며, 의사들은 왜 절제 없이 약을 남용하고 있는지 작가는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식품의약청이 임상 실험 현장을 급습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전체의 약 30%만 과학성을 인정받고 나머지는 조작과 부정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런 사실은 모두가 알아야할 사항들이다. 왜냐하면, 약으로 검증 받아야 할 임상 실험이 조작과 부정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무허가 약장수가 만들었다고 해서만 돌팔이 약이 아니다. 제도권이 헛점을 이용해 임상 실험의 조작과 부정으로 나오는 약들도 마찬가지다. 광범위한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어쩌면 떠돌이 무허가 약장수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다.


 약이라고 믿고 먹는 요즘의 의약품들이 이렇게 허술하게 나온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의사가 환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도 사실은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대로 환자에게 알려주면 약을 먹는 환자들이 거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요즘 현대의학이 번창하는 이유는, 의학이 제역할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의학을 절대 맹신하는 환자들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생각할수록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생활치유연구가  생태농부




약에 찌드는 아이들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이단자를 적발하여 처벌하는 이단 심문이 무성하게 행해졌다. 현대의학도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 주의 결함 다동성 장애 아이들에 대한 약의 남용일 것이다.


 행동을 억제하는 약은 본래 중증의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던 것이다. 현제는 데세드린, 사이라트, 리타린 토프라닐이라고 하는 여러 종류의 약이 100만 명 이상의 아이들에게 투여되고 있다. 그것도 주의 결함, 다동성 장애나 경미한 뇌손상이라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진단에 근거하여 투여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확한 검사가 가능하다면, 그 결과로 확인된 증상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 결함 다동성 장애와 관련한 약 20종류의 증상을 가려내는 정확한 검사 방법은 실은 한가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증상을 확정할 수 없는 검사는 증상과 같은 수이거나 혹은 그 이상일 만큼 많다. 의사는 이러한 이미 없는 검사를 통해, 전문가로서 그저 추측할 뿐인 것이다.


 텍사스의 어떤 초등학교에서 실지로 있었던 일이다. 이 초등학교에서는 뇌 손당의 치료 명목으로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을 얻어내기 위하여, 적당한 진단 기준만으로 1년 동안 전교생의 40%를 '경미한 뇌 손상'으로 진단하여 보고를 올렸다.


 2년 후, 언어 장애를 갖는 아동이 지급 대상으로 결정되자 보조금 지급은 중단 되었다. 그때부터 경미한 뇌 손상을 가진 학생은 모습을 감추었고 이번에는 35%의 학생이 '언어 장애'라고 진단되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학교가 교직원의 급료, 서적 대금, 운동 기구 구입 등의 보조금을 전용하여 쓰고 있다면, 도둑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의욕을 고취시켜주지는 못할 망정, 수업 중 어른같이 향동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주의 결함, 다동성 장애라는 진단으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낙인 찍힌 아아들은 약에 매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게다가 이때에 복용하는 약들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을 방해하고 고혈압, 신경과민, 불면증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약물 의존증을 초래하는 무서운 약이다.


 서인도 제도에는 부두교라는 종교가 있다. 이것은 정령 신앙 의식에 기독교가 섞인 토착 신앙으로, 그 저주에 걸리면 혼이 없는 사체가 좀비가 되어 돌아다닌다고 하는 미신이다. 약물 요법을 받은 아이들은 마치 이 부두교의 주술에 걸린 것처럼 된다. 살아는 있으나 살아 있는 게 아닌 좀비처럼 되어버린다.


 약은 확실히 아이들을 침착하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반응이 둔하게 되고 의욕은 감퇴된다. 밝은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무기력하게 되어간다. 장기간 관찰해보면, 약물요법이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약품개발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이런 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약 그자체가 아니라 의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마구잡이 진단과 오진, 약물 남용에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렇다해도, 자신의 손으로 개발한 약의 남용을 막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의학 잡지에 세 페이지에 걸쳐 광고가 게재 되었다. 그 광고 내용은, 어떤 교사가 자랑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이 약 덕분에 아이들의 글씨가 눈에 뜨일 정도로 예뻐졌습니다."


 글씨를 잘 쓰게 만드는 비약의 발매는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대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아이들에게 그 약이 투여된다. 연간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이 제약회사로 굴러들어가고 있다.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의 이단 심문은 약을 남용하여 아이들을 관리하는 의사에게 확실하게 나타난다. 중세 유럽의 이단 심문은 정통에 속하지 않은 신앙과 행동을 윤리상의 죄로 단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법률상의 죄, 즉 범죄라고까지 규정했다. 이단자는 교회에서 처벌 받고 이어서 세속적인 권위에 의해서 다시 처벌 받는다.


 한편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의 이단 심문은 사회 생활로부터 일탈하는 행위를 병이라고 규정한다. 그런 아이는 의사에 의해 약 남용이라는 형벌을 받으며 그들의 지배를 받는다.


 원래 학교라고 하는 것은, 학문적 지식을 일반인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뿐만 아니라 관리하기 쉽도록 사회성을 갖춘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대의학과 국가는 손을 잡고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1. 현대의학은 국가에 도움이 될만한 적합한 행동 기준을 만든다.

 2. 국가는 현대의학이 번영할 수 있도록 독특한 가치관(의료신앙)을 만든다.


 둘 다 국민 건강 관리라는 미명하게 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은 현대의학이나 국가에 있어서도 이미 관심사가 아니다.


 국가는 또한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에게 '성수'에 대한 권위마저 빌려주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성수란, 예방접종에 사용하는 왁친이난 임산부와 입원 환자에게 투여하는 정맥 주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 성수는 사람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요되어진다. 둘 다 99%는 필요하지 않는 것이며 안정성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모든 의과대학생들이 암기하는 이 문장은, 서양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선서로 의학의 제 1의 철칙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불이익이 될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의사가 되고나면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제약회사가 파견하는 의약정보 담당자가 실지로 하는 일은 영업이다. 그들은 막대한 이익을 의사와 나누어 갖기 위해 우호관계를 유지한다. 판촉활동의 일환으로 호화접대는 물론, 약의 샘플을 배포하느라 늘 의사와 접촉한다.


 의사가 제약회사로부터 입수할 수 있는 약에 대한 정보는, 딱게도 영업사원이나 의학잡지의 광고로 얻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치료 실험의 데이터가 되는 것 또한, 제약회사가 연구비를 지불하며 의사에게 일부러 제출을 부탁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상당히 의심스럽다.


 네 명의 노벨 수상자를 포함한 저명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약에 관한 문제를 연구한 결과 다음 두 가지 점이 판명되었다.


 1. 모든 악의 근원은 임상 실험을 행하는 의사와 연구자들에게 있다.

 2. 신약의 임상 실험은 엉터리다.


 미국 식품의약청은 임상 실험을 행하는 의사를 무작의로 추출하여 그 실험의 진행을 느닷없는 검사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가 다음과 같이 <미국 의사협회지>(1975년 11월 3일)에 보고 되었다.


 1. 전체의 약 20%가 부정한 분량을 사용하거나 데이터를 변조하는 등 온갖 부정 행위를 행하고 있다.

 2. 전체의 약 30%가 실지로는 임상 실험을 행하고 있지 않다.

 3. 전체의 30%가 진찰 기록과 다른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4. 전체의 약 30%만 임상 실험 결과의 과학성을 인정받는다.


 제약회사와 의사의 유착이 부패와 약물 피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해도 제약회사와 그 영업사원 정부의 단속기구, 약을 달라고 조르는 환자에게까지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제의 대부분은 의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의약품 정보를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할 입장에 있다. 임상 실험에서 중대한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면 약물 투여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본인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절제없는 투약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입장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다.


 제약회사는 기업이기 때문에 그 목적은 엄연히 이윤 추구에 있다. 따라서 자신들의 제품을 가능한 한 높은 가격으로 팔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제약회사가 임상 실험, 인가, 유통 등의 과정에서 적당히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시판하려면, 부작용과 금기에 관한 정보를 반드시 의사에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현실에서 제약회사는 약의 부작용과 금기에 대해 언급할 것을 요구 받지만, 굳이 직접 나서서 반대할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미국 의사협회가 완벽하게 대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손상되면 안 된다는 명목으로 환자에게 부작용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표현한다든지, 혹은 완전히 숨겨버린다.


 의사가 곧잘 하는 말이 있다. "환자에게 약에 관한 설명을 일일이 하고 있자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모자란다." "환자가 부작용을 모두 알아버리면, 약을 절대로 복용하지 않게 된다."


 의사가 지키고 있는 것은, 환자 본인이 아니고 환자와의 신뢰관계다. 그 관계란, 환자에게 사실데로 알려준다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하고 하는 것은, 환자의 맹신에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