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사악한 마귀
환자는 사악한 마귀
의사는 '성스러운 언어'로 자신을 지키고 있다. 세상의 세속적인 언어와 구별하기 위해, 종교는 성직자의 훈화에 성스러운 언어를 사용하여 유혹한다. 의사란 신과 언어 사이를 교차하는 성직자들인 것이다. 그 언어는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성스러운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의학 용어는 다른 업계의 전문 용어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업계 용어(은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의학 용어는 세상 사람들에게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서, 혹시 사람들이 그 이미를 알아버린다면 의사의 성스러운 힘도 사라져버리고 말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 내의 감염이 발생하면 의사는 일부러 난해한 병명을 붙인다. 이렇게 하면 환자도 노여움을 버리고 납득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의사에 대한 외경심조차 생기는 것이다.
의사가 고압적인 태도로 말하는 것도 환자에게 무력감을 안겨주어, 의사에게 일체를 맡기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신비의 베일로 의식을 포장하여, 과학의 힘이 그 의미를 추궁하지 않는 한, 의사는 어떤 치료라도 정당한 의료라고 잘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설명은 모순 투성이며, 논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의학 용어에는 환자를 치료 방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벽으로서의 효과가 있다. 그 벽은 환자에게 "너희가 도데체 무엇을 아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하물며 치료법에서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환자는 사악한 마귀일 뿐이니, 치료에 상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의사의 기본적인 사고 방식이다. 의사는 환자가 스스로 병에 맞서 싸워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만에 하나 의사가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들이 알게 되면,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러고 싶어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결정권을 자신이 혼자 거머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정밀함을 모은 하이테크 의료기기는, 의사의 권위를 살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 온갖 진찰실에 이러한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그것을 목격한 환자들을 위축시켜 의사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했습니다'라는 의사의 주장이 전기로 작동하는 금속 덩어리에 의해 주술적인 힘과 정당성을 띠도록 만든다.
만약 이들 대신에 달랑 검정색 왕진 가방 하나였다면 어땠을까? 의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했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환자나 그 가족이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넓은 진찰실에 주욱 늘어서, 가격이 100만 달러 가까이나 되는 하이테크 기기의 스위치에 손을 대는 순간, 의사는 하고 싶은 것을 완전히 다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것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나 사원에는 그 종교의 본존(종교 중심이 되는 상)이 놓여 있다. 의사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병원에는 많은 의료기기가 안치된다.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의 대성당(대병원)이나 그 밖의 성당(중소병원이나 진료소)에 발을 들여놓으면, 오류란 찾아볼 수 없는 신화로 무장한 성직자(의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무류성(오류가 없음)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에서는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 특질'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오히려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죤>
※독후감 후기
"환자들은 사악한 마귀일 뿐이니 치료에 상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의사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주장에 당혹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의학이 내부를 들여다보면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의학 용어의 난해함부터가, 환자가 치료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치료는 의사가 해도, 치유는 환자 본인의 자연치유력에 이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치료의 본래 목적은, 치유를 돕는 것이다. 치료에 환자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벽을 치는 것은, 치료가 치유를 돕고 있는지 환자가 모르도록 하는 행위다.
치유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환자다. 그러니, 치료 과정은 환자와 의사의 적극적인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이 소통을 가로막고 일방적 치료를 하는 것은, 의사들이 환자에 대한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치료가 치유를 돕고 있는지 환자가 알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의술은, 의료사기이며 범죄행위일 뿐이다. 작가는, 왜 의사가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존재라고 말하는지 이해할만 하다.
생활치유연구가 생태농부